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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화를 못 이기면 인욕 할 수 없고 인욕이 없으면 자비심 못 낸다

남과 함께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이 자비
인욕을 시작으로 자비심 가지려 노력하는 불자가 되길
상대 헤아리는 마음 가져 화합 하는 것이 자비의 실천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인욕을 뒷받침하지 않는 자비는 불가능하다”며 인욕으로 자비심을 키워갈 것을 당부했다.

계묘년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화엄사가 화엄 도량으로, 행복 도량으로 화엄사상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신 분들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화엄사 본말사 교역직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신년하례를 겸해 신년 법회를 하게 됐는데 늘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자비하세요.’ ‘참으세요.’ 지난해 1년 동안의 삶 중에서 이런 부분들을 얼마만큼 우리가 실천했는지 살펴보시고,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새해가 밝아서 한 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 우리 화엄사 대중들은 화엄사의 중흥조이시며 중창조이신 도광, 도천 큰 스님 두 분을 정신적인 어른으로 모시고 그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며 정진하고 있습니다. 계묘년 한 해에도 변함없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할까 하고 있습니다. 두 어른이 평상시에 늘 보여주고 말씀하셨던 것은 먼저 자비(慈悲)심 이었고, 두 번째는 인욕(忍辱)이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자비심을 가질 수 있어야 진정한 불자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설하셨던 ‘화엄경’부터 마지막 ‘열반경’까지 빠짐없이 거론된 내용은 자비입니다. 자비심을 갖더라도 인욕이 동반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인욕하지 않으면 자비심이 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잘해줬는데 네가 내 뜻대로 안 따라주고 내 생각과 다르게 간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토라지고 성질을 내게 됩니다. 그래서 ‘인욕을 뒷받침하지 않는 자비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자비와 인욕에 대해서 점검해보고 정말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자비심을 일으키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비란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자비입니다. 우리 불자들이라면 그러한 자비의 마음을 평생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30년 불자, 50년 불자, 수계불자, 어느 스님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말하면서도 그 말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쁜 사람이나 예쁘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합니다.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미워서 내치는 모습들이 적지 않습니다. 저 역시 소임자이다 보니 때로 그런 모습을 보여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만, 우리 사부대중 모두 그 자비심을 항시 바탕에 두고 한 해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비는 인욕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인욕은 욕되는 일을 참아내는 것이고 원망하거나 성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가리왕(歌利王)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리왕이 동료들과 같이 야유회를 가서 술을 마시고 놀다가 취해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궁녀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살펴보니 어느 나무 아래 고요히 정좌하고 있는 어느 수행자 옆에서 수행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간 질투가 난 왕이 어찌 궁녀들을 희롱하느냐고 질책하자, 그 수행자는 희롱하는 것이 아니라 궁녀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답을 해주고 있다고 답합니다. 이에 왕이 수행자는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떨어지고 목이 떨어져도 화를 내지 않고 인욕을 한다는데 한번 해보자며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그럼에도 그 수행자는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전생담인 이 이야기는 인욕을 대표할 만한 내용입니다. 부처님처럼은 못하더라도 늘 참고 인욕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바탕이 돼야 자비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자비’ 다음으로 많은 이야기가 ‘삼독심’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갖고 있으면서도 더 갖고 싶어 하는 지나친 욕심은 탐심(貪心), 싫은 것은 절대로 싫어하고 미워하면 계속해서 미워하는 진심(瞋心), 좋은 것도 좋은 걸로 보지 않고 나쁜 것도 나쁘게 보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생각을 갖고 있는 치심(痴心)을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탐심과 치심은 그래도 여러분이 노력하면서 하나하나 줄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은 줄여가는 게 어렵습니다. 진심은 다른 말로 ‘화’입니다. 한 번 일어나면 제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인욕에 대한 것을 배우려면 화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화, 진심은 제어가 잘 안되기 때문에 깊이 다지고 또 다져야 합니다. 

틱낫한 스님이 “화나는 모습을 천천히 관찰해보라”고 했는데, 사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또 우리 조계종이 선종인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는 것, 마음을 관하는 것, 마음을 살피는 것에 굉장히 어색해하고 잘 하지 못합니다. “항시 깨어 있어서 저것 때문에 화가 나는구나” 하고 살피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잘 안됩니다.

하지만 화의 원인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합리화, 자기 정당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다툼과 갈등이 있을 때 대다수가 내 잘못은 20%이고 상대가 80% 정도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내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냅니다. 그것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화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합리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100%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점차 내 잘못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연습을 하다보면 화를 줄이게 됩니다. 화를 이기지 못하면 인욕 할 수 없고, 인욕 할 수 없으면 자비심을 내기 어렵습니다.

올해는 화를 참는 인욕으로 시작해 자비심을 갖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나는 잘못이 없고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생기는 것이니, 내가 잘못했고 당신은 잘못이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합시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호구요’ ‘내가 바보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냥 호구 되세요.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예쁜 사람만 계속 예뻐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계속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비심을 내기 어렵게 됩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자비심을 일으켜야 진정한 불자이고 수행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합이라는 조화로움이 깨지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이유는 상대방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 형제, 친구, 도반, 사회 일원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비의 실천입니다. 인욕해서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야 하고, 그들을 위해 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금강경’ 사구게 중에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즉 ‘무릇 있는바 보이는 상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바로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껍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아름다움, 지위가 높고 낮음 등 외형적인 부분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자비와 인욕과 마음을 헤아리는 것, 이 세 가지가 2023년 계묘년 우리들의 수행 화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2월9일에 상월선원 순례단의 많은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인도를 가게 됩니다. 또 그 기간에 1000명 이상이 인도순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걸었던 그 길에서 부처님의 근본 마음을 얻고 부처님의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순례입니다. 40일 이상 험난한 순례를 통해 부처님의 근본정신, 자비정신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도 멀리서 응원하면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인 자비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윤달이 있는 해이기도 합니다. 윤달을 공달이라고도 하는데, 남는 달에 생전예수재를 통해 미리 공덕을 더 지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되새기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보살계입니다. 계를 받고 마음에 새기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확실히 달라지게 됩니다. 인욕이 달라지고, 배려하고 헤아리는 마음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귀의 삼보하옵고, 부처님 전에 삼가 발원 하나이다. 계묘년에는 모든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참 불자가 되게 하소서. 어머니가 자식을 목숨 바쳐 위기로부터 구해내듯이 모든 중생을 자비의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깨어 있는 한 늘 염불하며 자비의 마음을 놓지 않겠나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마음으로 계묘년 내내 행복의 길을 걷게 하여 주소서.’

정리=신용훈 기자 boori13@beopbo.com

이 법문은 1월7일 화엄사 신년하례 화엄법회에서 주지 덕문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65호 / 2023년 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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