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안 천불사 주지 인경 스님

참선으로 자성 깨달으면 바로 부처이고 본래면목 보게 됩니다

자비심이 관세음보살이니 스스로 관음보살 되도록 해야
이 세상은 나 혼자서 살 수 없는 곳이니 남 돕는 실천 필요
원력을 세우고 자부심 지녀서 자비와 공심으로 살아가길

인경 스님은 참선을 통해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 환(幻)에 속지 말고 바른 길, 살 길을 찾아갈 것”을 당부했다.
인경 스님은 참선을 통해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 환(幻)에 속지 말고 바른 길, 살 길을 찾아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은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중생은 환(幻)으로 왔다가 환을 따라 모두 가버립니다. 가고 오는 것이 다 환 가운데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환 속에 환 아닌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요, ‘본래의 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미물이라 생각하는 벌레를 도와주는 것이 나무토막이나 돌멩이‧쇠를 녹여서 만든 법당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공덕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법당의 부처님 앞에서는 겁을 내고 죄지을 마음을 안 내는데, 벌레는 보잘 것 없고 부처님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함부로 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에 미물들로 여겨질지라도 천한 것이 아닙니다. 쥐 속에도 부처님이 있습니다. 이 시간만 쥐의 몸을 받았지 실제로는 털끝만치도 모자라지 않은 살아있는 부처님입니다. 사람만이 제일이 아닙니다.

바다에 천 개의 파도가 일어날 때도 있고, 만 개가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떠나서는 파도가 없듯 여기에 이렇게 사람의 수가 많아도 마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네 마음, 내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뚱이만 네 몸뚱이, 내 몸뚱이가 따로 있지 마음은 바다가 하나밖에 없듯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파도만 꺼져버리면 잔잔한 바다가 되지 않습니까. 번뇌 망상과 ‘나’라는 생각만 버리면 파도가 잔잔한 바다로 변하듯이 우리는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복 짓는 것도 잘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복 지어라” 하고 가르쳐 준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거룩해서 공양한다고 하는데, 사방 부처님에게 여러 가지 다 갖다 바치더라도 고통 받는 한 중생을 도와주는 공덕만 못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나 아닌 남을 마음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돕는 것이 언제 어디서든지 불공을 하는 길입니다.

허공 속에 만물이 다 들어 있는 것처럼 우리 본마음만 알면 배우지 않아도 그냥  한목에 다 알아지게 됩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마음에 물든 바가 없어 무심이 되고 망념이 나지 아니하여 주관과 객관의 마음이 없어지면 일체가 다 때가 없어져서 청정무구한 까닭에능히 자성으로 보는 능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공(空)하다는 말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번뇌 망상이 비면 밝은 부처님 마음이 나타난 묘공(妙空)이지 아주 끊어진 단공(斷空)이 아닙니다. 서양의 불교박사가 언젠가 공의 도리(空道理)를 묻기에, 제가 텅 빌 공(空)자가 아니고 있을 유(有)자와 없을 무(無)자가 합해진 공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진공(眞空)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보이는 해는 천 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그 해이지 다른 해가 아닙니다. 물은 만 년 전에도 밑으로 내려갔지 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옛 사람이 있고 오늘날의 사람이 있는 것이지,법은 예와 이제가 없습니다. 사람은 어리석거나 지혜가 있거나 할지언정, 도는성하고 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 육신은 눈으로 보이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나와 법신은 억만년 공을 들여도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 눈은 반디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더라도 크고 넓게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고 둔합니다. 하지만 법신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법신을 마음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라도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 중에서도 참선을 해서 나를 알면 천지가 다 내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도 닦는 사람이 부자인 것입니다. 내가 공부만 하면 천지가 내 주먹 안에 다 들어오는데 그 누구부러워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집 식구만 생각하면 어찌 지옥에 안 가겠습니까? 이 세상은 나 혼자 나올 수도 없고, 나 혼자 살 수도 없는 곳입니다. 모두가 남의 혜택으로 날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도 남을 도와주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남을 좋게 해주면 복을 안 받으려고 해도 저절로 복을 받게됩니다. 옛날에는 도인들이 전부 채소밭가꾸는 데서 나오고, 부엌에서 나오고,머슴살이하는데서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네가 성인이고, 네 마음을 닦으면 네가 부처다”라고 가르쳤는데 다른 종교는 구원받고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성인은 되지 못한다고 하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고생고생하며 믿더라도 강물이 바다로 들어오듯이 내생에는 불법으로 그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냇물과 강물이 바다로 가지 갈 데가 없는데 어디로가겠습니까? 불법은 사람이 들어오는바다이므로 어떤 종교든지 불법으로 다 돌아옵니다. 몇 생이 지난 뒤에는 다른 종교를 믿어도 수지맞지 않으니까 돌아다니다가 다 들어오게 됩니다.

자성을 깨달으면 바로 부처이고 자비심이 관세음보살이니, 관세음보살에게 나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관세음보살 노릇을 하면 됩니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곧 관세음보살입니다. 남을도와주면 기도를 안 해도 복을 받게 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남을 도와줬다고 거지 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남을 도와주면 참말로 내가 살아날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자비심은관세음보살이고, 내 마음을 버리고 양보하는 희사심(喜捨心)은 극락세계 대세지보살입니다.

참선이란 인간 본래면목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깨달음의 길이요, 인간 혁명의 길입니다. 불교는 인간에게 최상의 혁명입니다. 본래의 길에서 탈선된 채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안 죽는 길, 살길로 혁명해서 찾아가는 길이 바로 불법이고 참선입니다.참선하는 길은 격외선(格外禪)이라 하여 팔만대장경을 떠나서 따로 있습니다. 길이 다릅니다. 그런데 참선도 안 하는 복 없는 사람들이 팔만대장경을 뒤적거리고 거기서 배워 알려고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개가 날아가 버리고 없는 꿩을 잡으려고 헤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미 꿩은 도망쳤는데 거기서 몇 십 년을, 백 년을 뒤진다고 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속지 말고 바른 길, 살 길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시방세계에 죽어가는 사람을 한몫에 살려주는 공덕도, 눈 깜짝할 시간에 “이 뭣고?”하는 것만 못합니다. 이렇게 참선하는 값이 비쌉니다. 복 없는 사람은 참선을 못합니다. 재미도 없고 공부해봐야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은분들이라면 “나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 가지고 이런 법을 만났는가?”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참선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겠습니다. 첫째는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원력은 자동차의 핸들과 같습니다. 자동차가 새것이라도 핸들이 고장 나면 소용이 없듯이 ‘내가 백번을 죽더라도 이 참선을 해서 도인이 되어야겠다’는 원력을 세우십시오.

두 번째는 혼자서는 공부하기 어려우니 가르쳐주는 사람을 찾아가야 됩니다. 세 번째는 언제든지 좌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할 때나 일 없을 때나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걸어갈 때나 참선하는 마음을 갖고, 화두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네 번째는 어떤 일을 할 때라도 “이 뭣고?”를 생각해가면서 해야 합니다.

이어 다섯 번째는 참선하는 분들은 ‘나는 살길을 찾아가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돈 없다고 얼굴 찡그리고 다니지 말아야합니다, 부처님은 항상 밝고 쾌활한 표정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삼킨 사람이 바로 참선하는 사람입니다. 달을 집어삼킨 사람이 참선하는 사람입니다. “이 뭣고?”를 하면 해나 달덩이 보다 더 밝은 것이 나오니까 그런 표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얼굴을 활짝 펴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도와줄 사람도 생기고 좋은 귀신도 따라다닙니다.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 운명도 따라서 나빠지게 되니, 근심 걱정을 하거나 병든 표정을 하지 말고 ‘내가 제일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얼굴에도 제일이라는 왕(王)자가 붙게 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긍정적인 말을 하고 남의허물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본 남의 허물은 내 마음의 허물이며 나 자신의 허물입니다. 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남의 허물을 보는 것은 내 허물을 보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일곱 번째는 자비와 공심(公心)으로 살아야 합니다. 중생이 불쌍하니 자비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남을 이기려 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참선하는 사람은 언제나 너다 나다 하는 상(相)을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고 다 내버리고 갈 것들이니 도를 재산으로 믿고, 살림살이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여덟 번째는 참선하는 사람은 적어도 기초적인 가르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가르침을 이해할 때 비로소 길이 바르게 되고 성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말도 또 잊어버리게 되니 언제든지 가르침을 듣고 또 듣고 날마다 밥 먹듯이 자꾸 듣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를 실천하면 참선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분의 일상 삶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올 계묘년 한 해는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수행의 길에 들어서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정리=강태희 충청지사장

이 법문은 천안 천불사 주지 인경 스님이 1월9일 지장재일 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66호 / 2023년 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