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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는 힘, 용서하는 힘

기자명 성원 스님

초유의 북극 한파도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사로운 마음의 열기는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백설이 만곤건하던 제주의 폭설이 하룻낮에 다 녹아버렸다. 눈이 하늘 가득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이 눈 걱정 했다. 하지만 한나절 시간에 이렇게 눈도 다 녹아나고, 사람들의 번뇌도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작금의 우리 불교 현실도 눈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불경에 “보살은 인(因)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과(果)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고 했다. 보살은 큰 지혜로 살펴서 나쁜 원인을 미리 끊어 버리기 때문에, 죄와 업이 쌓이지 않고 공덕을 원만히 쌓아서 부처를 이룬다. 하지만 몽매한 중생들은 늘 그 결과가 얼마나 나쁜지를 알지 못한 채, 악업의 원인만 지으면서도 그 결과가 도래할 시기가 오면 그때서야 피하려고 급급해한다. 

신년부터 일탈한 승려의 이야기가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엉클이고 있다. 사실적 이야기는 좀 더 인내를 갖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겠지만 표면적으로 비친 일만으로도 정말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대중들은 보고 싶어한다.

언젠가 대중처소에 있을 때 대중의 공분을 일으킬 일을 저지른 스님이 있었다. 자연히 처벌의 목소리가 높았고 거듭 주장되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짤막하게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라고 대중에게 고했다. 사건에 비해 너무 간결한 사과인 듯 느껴졌다. 그 후 큰스님께서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었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로 모든 걸 덮으셨다. 그러자 스스로 마음이 편하지 못한 대중들이 계속 질타를 이어가며 시시비비하며 따지고 있었다. 그때 큰스님께서 단호히 하셨던 한마디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담겨 있다.

“그만하세요, 잘못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 불보살이 아닌 우리들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다. 양심껏 되돌아보면 스스로 정말 들어내지 못할 뿐이지 용서를 받고 싶은 후회스러운 일들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진실하게 용서 구하고, 그 참회를 요즘 말로 쿨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모순의 세계인 사바세계에 살면서 모든 모순을 없는 듯이 지우고 살아가기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아쉽게도 근간 승단의 일들을 접하다 보면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없고, 시원하게 용서를 받아들일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양심이 정말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대중들도 지난 시절 어느 큰스님같이 타인의 잘못을 넉넉히 받아들여줄 여유도 필요한 것도 같다. 

용서가 답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가능한 범주에서 단절과 파멸보다는 용서로 화해하며 함께 가는 길이 더 아름다울 것만 같이 느껴진다.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도 어찌 보면 대중들이 용서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자가당착에 빠져서 더욱 참회의 바른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는 처벌보다는 이해와 용서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다. 잘못을 일으킨 당사자가 진정성을 담아 “참회합니다”라는 한마디 해주기를 대중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사람들의 인지상정이 그렇고 특히, 우리 민족성이 그렇지 않은가.

오늘도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 앞에서, 후회하는 일 앞에서도 밝은 길을 찾아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이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번 일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이제는 종단의 많은 스님이 깊이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서 정말 처음 불법을 접했을 때 그 설렜던 초발심의 자세로 돌아가 본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용서하지 못할 것인가? 용서를 구하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용서해주는데도 분명 큰마음이 필요하다.

입춘이 되어 대지를 덮은 눈이 다 녹아내리듯 우리 주변의 번뇌가 자비의 물로 다 씻기워지면 좋겠다.

성원 스님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 학장
sw0808@yahoo.com

[1667호 / 2023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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