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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종소리로 존재하던 시절

2022년 6월에 흥천사 종이 사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기사가 법보신문에 실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종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로 치환해 보고 싶다. 종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 불교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종의 적합한 위치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면 좋겠다.

조선의 왕 가운데 태조, 태종, 세조는 종을 만드는 데 꽤 집착했던 인물이다. 태조는 1395년에 경복궁 광화문 2층 문루에 종을 매달고, 1398년에는 운종가 종루에도 백금 50냥으로 주조한 대종(大鐘)을 매단다. 이 종은 임진왜란 때까지 200여 년 동안 ‘한양의 시계’ 역할을 했다. 태종도 1413년에 창덕궁을 지은 후 주철 1만5000근으로 대종을 주조하여 돈화문에 매단다. 궁궐을 짓고 그 안에 ‘시간의 소리’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434년에 세종도 태조가 매단 종을 떼고 광화문에 새 종을 매단다.

세조는 1456년에 대궐 안에 대종을 두었다가 그 후  광화문 밖 서쪽에 종각을 만들어 이 종을 매단다. 1461년 5월에는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 경복궁의 내전과 함원전 등에서 잇달아 석가여래의 사리분신(舍利分身)이 일어난다. 이 일을 기념하여 세조는 1462년에 대종을 주조하여 흥천사에 매달고 종소리로 염불의 시간을 알려 중생을 제도하게 한다. 

1464년에 다시 사리분신이 일어나자 세조는 흥복사 부근의 인가 200여 채를 철거한 후 원각사를 세우고, 1465년에는 구리 4만~5만여 근으로 대종을 주조한다. 1467년이나 1468년에도 세조는 대종을 주조하여 운종가 종루에 둔다. 그런데 이 대종의 정확한 이름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조선 시대 ‘종의 역사’는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조선금석총람’에 실린 ‘경성 보신각종기’에 의하면 보신각종의 종명은 1468년 세조 14년에 새겨졌다. 따라서 1985년까지 종로 보신각에 걸려 있던 종은 세조가 주조한 종이 맞을 것이다. ‘동국여지비고’에도 원각사에 대종이 있었고 이 종이 바로 지금 종루의 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465년에 주조한 원각사 종이 1468년에 다시 주조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종로 종각뿐만 아니라 원각사 종루에서도 종을 쳐서 시보(時報)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중종 때 흥천사와 원각사가 완전히 사라지자 김안로는 흥천사의 종을 흥인문에, 원각사의 종을 숭례문에 매달려 했지만 결국 종은 매달리지 못하고 방치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종각의 종이 파괴되자 선조는 숭례문에 있던 원각사 종을 종로 종각에 매달았고, 그 후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가 이 종을 옮겨 명례동 고개에 매달았다. 이 고개는 종현(鐘峴)이라 불리게 되며 1898년에는 이곳에 명동성당이 세워진다. 아마도 이 종이 다시 종현에서 종로의 종각으로 돌아와 보신각종으로 불렸을 것이다. 원각사종, 즉 보신각종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흥인문에 있던 흥천사 종은 1865년에 광화문 문루에 매달려 잠시 ‘시간의 소리’로 부활한다. 그러나 너무 오랫 방치된 흥천사종은 1870년 이후에 파손되어 사용되지 못한 것 같다. 이 종은 1910년 무렵 창경궁의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1938년부터는 덕수궁 광명문에 걸려 자격루와 함께 전시되었다. 지금은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경복궁에 보관 중이다.

조선에서는 물시계를 기준으로 도성의 성문을 닫는 인정(人定)과 성문을 여는 파루(罷漏) 때 종을 쳤다. 조선 초기에는 64괘(卦)를 따라 64번 종을 친 듯하고, 1414년부터는 파루에만 28수(宿)를 따라 종을 28회 쳤다. 비로소 세조 13년인 1467년부터는 인정에 28번, 파루에 33번 종을 치는 것이 법식으로 정해진 듯하다. 사리분신으로 원각사종이 주조된 후 ‘불법의 소리’를 널리 33천까지 전달한다는 의미로 파루의 타종 횟수가 정해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의 역사’ 앞에서 이제 우리가 종을 어디에 두는 것이 맞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이것은 불교의 역사를 사찰 안과 밖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불교가 ‘종’이 아니라 ‘종의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 연구원 교수 changyick@gmail.com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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