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생적인 성역화' 차단 못하면 종교갈등은 필연”

  • 교계
  • 입력 2023.10.27 19:30
  • 수정 2023.10.28 18:32
  • 호수 1702
  • 댓글 3

이창익 고려대 연구교수, 논문 ‘성지의 연대기와 유형’으로 '기생 성지' 등 성지 유형 분석
“고증되지 않은 역사로 국가적·역사적 성스러움에 박해 이미지 덧씌우는 행태 멈춰야”

한국 가톨릭계가 역사유적에 들러붙어 공공 장소를 성역화하는 행태를 정부나 지자체가 제지하지 못하면 종교 간 갈등은 물론, 가톨릭계와 일반시민 간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가 10월27일 서울 전법회관에서 열린 불교사회연구소 세미나에서 논문 ‘성지의 연대기와 유형-한국천주교 성지 조성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문제점’을 발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 가톨릭계의 성지 개발은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절두산·새남터·당고개·서소문·해미·갈매못·남한산성·황새바위·울산 병영·장대골·대구 관덕정·전동성당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순교자를 중심으로 한 성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순교자 유해 보존율은 26%로 매우 낮다. 성인 103명 가운데 불과 27명 유해만 보존돼 있을 뿐이다. 유해가 있었다면 무덤을 중심으로 성지를 조성하면 됐다. 하지만 유해가 없으니 순교 행위나 순교자 관련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며 성역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 교수는 "가톨릭 성지가 질서정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띄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매우 힙겹고 인위적으로, 심지어 작위적으로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가톨릭 성지 유형을 6개로 나눠 각각 규정하기도 했다. ‘무한증식 성지’를 비롯해 ‘기생 성지’ ‘위장 성지’ ‘문화재 성지’ ‘불가역적 성지’ ‘지워진 성지’ ‘순례길 성지’이다. 

이중 ‘기생 성지’는 역사유적·유물·사적지에 들러 붙어 성지로 조성된 경우다. 먼저 공공예산으로 비종교적인 역사문화재·사적지·기념물을 조성한 뒤 가톨릭적 해석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해미읍성·홍주읍성·청주읍성·면천읍성·동래읍성·감원감영이 여기에 해당된다. 홍성군의 경우 2003년부터 10년 간 국비 200억원 이상을 투입해 홍주성 역사공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천주교회도 2011년 홍주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며 순교성지 조성을 추진했다. 명목은 문화재 복원사업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순교 의미를 덧씌웠고, 이를 통해 읍성을 새 순교성지로 탈바꿈시켰다.

‘위장 성지'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이웃종교나 시민단체 를 의식해 겉모습은 성지로 보이지 않지만 그 속은 지극히 성지다운 장소들이다. 대표적으로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이 있다. 그는 “서소문성지는 ‘서소문 역사공원 조성’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됐다. 지상에는 공원을, 지하에는 주차장을 건립하는 것이 최초의 기획이었다. 결국 지상은 역사와 관계 없는 황량한 공원이 됐고, 지하는 지극히 종교적인 장소로 변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추진중인 ‘인천 답동성당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거론하며 "지하주차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가톨릭계가 서소문·포도청·광희문·읍성·관아에 박해 이미지를 덧씌워 '국가적·역사적 성스러움'을 훼손하는 것에 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어떠한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종교 간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종교 갈등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의 갈등까지도 조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지자체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도 꼬집었다. 객관적인 고증 과정 없이 가톨릭 성지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개별 종교 역사는 내부 비판의 회로를 차단한 채 기술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종교적 자기 이해의 기술이지 객관적 역사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천주교회사 연구자들의 추측성 연구마저 성지 개발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교수가 논문에서 언급한 가톨릭 성지의 개발 공사비는 약 4775억원이다. 서소문성지 서소문 성지 약 600억원, 황새바위 성지 25억원, 홍주 순교성지 200억원 이상, 이승훈 역사공원 100억원, 답동성당 역사공원 254억원, 서지마을 순교자기념관 30억원, 풍수원 성당 바이블 파크 약 300억원, 한티 억새마을 약 40원억, 양업명상마을 160억원, 가톨릭 목포 성지화 사업 750억원, 치명자성지 세계평화의 전당 296억원, 천호성지 300억원, 나바위성지 문화체험관 100억원, 호남의 사도 유항검관 약 60억원, 명동성당 종합계획 총 4단계 중 1단계 460억원, 동서 트레일 600억원 등이다.

이 교수는 "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기념물을 조성하기 위해 수천억원 혹은 몇 조의 공사비가 든다. 이는 사람을 위해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천주교 성지 개발에 대한 정부·지자체 예산이 종교 갈등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종교 간의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때문에 종교만을 위한 성지가 아닌 국민을 위한 성지로서 공공재 기능을 할 경우에만 세금을 투입해야 하고, 종교 성지 개발을 원천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문화나 관광이라는 포장지에 감춘다고 해서 종교가 저절로 문화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종교를 종교로서 다룰 때 의미 있는 종교 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의 종교는 어떻게 살아왔나? 박해와 공존으로 본 조선시대 종교’를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박종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성주현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 교수, 이종우 상지대 FIND칼리지학부 교수, 김선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임형진 경기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신광철 한신대 디지털영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 객원교수, 이재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 함께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03호 / 2023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