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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성지, 학문적 근거나 성지로서 논리 없다"

  • 교계
  • 입력 2023.10.26 13:00
  • 수정 2023.10.27 08:46
  • 호수 1702
  • 댓글 1

가톨릭계 중진 인사 박문수씨, 불교사회연구소 세미나서
"교회사 공부한 학자들은 성지 개발 근거 논리 인정 안해"
"교구중심제 악용사례…KCRP·종지협이 갈등중재 나서야"

“천진암 성지는 박정희 정권의 혜택으로 개발됐습니다. 수원교구장이었던 김남수 주교가 대표적인 친(親) 박정희계 인사였죠. 유착관계는 전두환 정권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천진암은 정작 학문적 근거나 성지로서 논리는 없습니다. 몇몇 신부와 고위 성직자들 욕심에 의해 개발됐어요. 교구 중심제가 악용된 사례죠.”

의정부교구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장,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계 중진 인사' 박문수씨가 10월23일 서울 전법회관 3층에서 열린 조계종 미래본부 불교사회연구소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대국가의 종교 관련 법과 행정’을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는 미래본부 사무총장 성원 스님, 불교사회연구소장 원철 스님,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대전대 경찰학과),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홍선기 동국대 법학과 교수, 임복희 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심민석 동국대 법과대학 대우교수, 심일종 서울대 강의교수가 함께했다. 

박문수 의정부교구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장은 이날 토론자로 나서 '천진암 성지 개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가 언급한 천진암은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불교계와 가톨릭계 간의 좀처럼 꺼지지 않는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가톨릭계가 절터에 성지화를 추진하며 불교 흔적을 지우고 가톨릭 역사를 덧씌웠기 때문.

이들은 천진암의 ‘암자 암(庵)’을 ‘풀이름 암(菴)’자로 바꿨을 뿐 아니라 천진암이 사찰이 아니라 별자리를 보는 작은 초막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천진암 인근에 자리하던 영통사, 회령사 스님들을 쫓아내는 데도 거침없었다.

박 소장은 "천진암은 (천주교발상지)근거도 없고 역사도 아니다. 교회사를 공부한 학자들은 지금 거기(수원교구)에서 성지 개발의 근거로 삼고 있는 논리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다"며 "(가톨릭계)내부에서도 천진암이 한국천주교회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적어도 이쪽(가톨릭계)의 양식 있는 학자나 성직자들은 다 (진실을)알고 있다. 잘못됐다고 지속해서 지적하는 데도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이어 "천진암 성지 개발은 특혜였다. 수원교구장이던 고 김남수 주교(1922~2002)가 대표적인 친 박정희 인사였다. 특혜를 받아 거기(천진암 일대)를 구매할 수 있었다. 이런 개발은 전두환 때까지 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 천진암은 성지 개발 추진 과정에서 몇 차례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다. 특히 대성당 공사 과정에서 땅을 메꾸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14호이던 우산리2호백자가마터 2기를 그대로 묻어 버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은 ‘동아일보’ ‘연합뉴스’ ‘한겨레’ 등 주요 일간지(1992년 9월7일)에 일제히 보도됐다. 언론들은 "천주교 수원교구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될 만큼 중요했던 조선 초기 백자가마터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변기영 신부가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그해 9월13일 가톨릭계 언론 인터뷰, 일간지 광고 등을 통해 “사적 훼손은 근거가 없는 허위다. 천주교 성지개발을 막으려는 투기업자나 천주교를 음해하는 세력이 고의로 흘린 정보”라고 반박했다. 변 신부의 주장과 달리 천진암 건립 지역에서 백자를 굽던 가마터 유물이 발굴됐고 '동아일보'가 1993년 4월21일 이를 한 차례 더 보도했지만 성지 화 제동을 걸긴 역부족이었다.

사적 훼손으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국회 문공위 국정감사에 주요 사안으로 다뤄졌지만, 성지 개발이 좌초될 뻔한 위기는 김남수 주교의 정치력으로 돌파됐다고 알려져 있다. 천진암성역화위원회 총재였던 김 주교가 대성당건립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에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앉혔다. 또 최병열 국회의원, 한영석 변호사, 장덕진 대륙연구소장 등을 부위원장으로 위촉했다(‘연합뉴스’ 4월18일자). 또 매년 천진암에서 ‘한국천주교회 창립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고 유인촌(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문수(전 경기지사) 등 주요 행정가를 행사장에 초대했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천진암 대성당’ 이름을 돌연 ‘한민족 대성당’으로 바꾼 뒤 천진암이 통일을 염원하는 성당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박 소장은 이날 우리나라 종교문화·종교시장이 기독교계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도 분석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한국사회 중상(中上)층 출신 신자들이 대거 입교하면서 천주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 그 결과 입법부, 행정부 내에서 그리스도교 신자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사법부도 그리스도교 국가 사례를 우선 선택함으로써 편향성을 띠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 신자는 10년이 지나도 밝히지 않아 신자인지 모른다. 그래도 이분들이 음으로 양으로 천주교에 유리한 것을 한다"고 말했다. 

천진암 성지 개발은 천주교의 교구 중심제가 악용된 사례라고도 했다. 박 소장은 “문제는 교구 중심제가 악용된다는 것이다. (비판 목소리가 많아도)한 교구가 경계를 넘어 다른 교구에 관여하기가 쉽지 않다. 교구장이 욕심을 부리면 다른 교구가 통제할 방법이 없다. 천주교중앙협의회의 경우 연합조직이 아니다. 협의회다. 때문에 각 교구가 중심이 된다. 교구는 바티칸 교황청과 1대1 관계이다. 중앙협의회 통제를 받지 않는다. 교황청에 제소해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에 가톨릭 성지가 189개나 지정된 것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그는 "본래 성지라고 하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일대’ 제외하고는 성지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적지다. 예수와 직접 관련된 곳 빼놓곤 성지라고 할 수 없다. 사적지라고 하면 복잡한 문제가 안 생겼을 텐데 1970년대 중반 (교황청이)성지 범위를 플렉시블(Flexible)하게 해뒀다. 그러니까 웬만한 곳을 다 성지라고 한다. 성지를 189개 가까이 만드는 것, 사실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제공하는 가톨릭정보(maria.catholic.or.kr)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가톨릭 성지로 지정된 곳은 189곳이다.

이어 "(순교자)무덤이 있으면 있는그대로 둬야한다"면서 "박해 받았을 땐 초라한 게 맞지 않느냐. 잔디를 잘 가꿔 놓고 건물을 (크게)지어 놓는다고 감흥을 느끼는 게 아니다. 초라한 곳에 가서 '당시 이런 상황이었구나'하고 느끼는 게 더 거룩하다. 신자로서는 그럴 때 감동을 느낀다. 대부분 신자들이 (웅장한 성지 조성에)거부감이 있다. 이는 역행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박 소장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종교 갈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종단 간 협의 기구가 여러 개 존재한다. 정부 예산을 받고 있다. 이런 기구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이런 종교 간 갈등이 생겼을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임무 방기 아닌가. 정부가 이 역할을 기대하며 예산을 지원하는 것인데 너무 소극적이지 않은가 한다. 일과성 과시성 행사보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활동에 비중을 둘 수 있기 바란다”고 했다.

박 소장은 “천주교가 갈등 유발 주체로 평가받고 있어 유감이다. 발표자들이 든 사례들을 보면 이웃 종교들이 천주교를 이렇게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충분히 이야기를 들을 만하다.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면 대신 책임 지고 싶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계종 미래본부 불교사회연구소(소장 원철 스님)는 10월27일 오후 2시부터 전법회관 3층 세미나실에서 ‘조선의 종교는 어떻게 살아왔나? -박해와 공존으로 본 조선시대 종교-’를 주제로 호국불교연구 학술세미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702호 / 2023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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