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 경전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면 목숨을 마칠 때 반드시 아미타불께서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지만, 정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극락에 직접 가서 아미타불을 친견했다는 영험담도 있습니다만, 경전의 말씀도 믿을 수 없다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경험은 더욱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두 분의 실제 임종 모습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물론 임종자가 실제로 어떤 일을 겪는지는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정토 신자로서 임종하신 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0년 전 일입니다. 이 분은 참선을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의 경지를 맛보고, 보시도 열심히 하던 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생겨 얼마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죽음 앞에 서자 모든 일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며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불교 수행을 한 분이라 이생에 해탈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극락 왕생을 결심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염불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임종 전 4일째부터는 동공이 풀리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첫째 날은 하얀 양복을 입고, 하얀 베레모를 쓴 존재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했습니다. 둘째 날은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참회했다고 했고, 셋째 날에는 극락 외에는 갈 곳이 없다며 왕생하여 성불한 뒤 중생 구제하러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넷째 날은 하나의 호흡에 명호 한자씩 ‘아미타불’을 불렀습니다. 마지막까지 호흡은 편안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하루 내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천장을 환희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며 ‘저기를 보라’는 듯 위를 가리켰습니다. 물론 일반 사람의 눈에는 천장만 덩그러니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편안하고 환희롭게 생을 마감하고 왕생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임종자가 보는 환영이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들려드리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환영이라 할지라도 염불하며 환희롭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분은 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형편껏 보시도 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병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언젠가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그 희망을 꺾어 버렸습니다. 임종 15일 전 동공이 풀렸고 말은 어눌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하시라고 했지만,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버릴 뿐이었습니다. 임종 4일 전까지도 숨쉬기가 힘들어지면 ‘수술을 시켜달라’고 조르며, 더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임종 3일 전부터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면서는 그저 울뿐이었습니다. 힘이 없어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데 울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숨을 붙들려 애쓰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위 두 사례는 너무나 대비됩니다. 한 분은 삶에 대한 집착 때문에 마지막까지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앞의 사례는 내영(來迎)을 함께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아미타불께서 약속하신대로 마중 나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이 두 분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내영(來迎)을 보고 환희하며 왕생하셨다고 확신이 드는 분도, 편안하게 가신 분도, 괴롭게 가신 분도 여럿입니다. 이 생을 갈무리할 때 어떤 모습이면 가장 좋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미탄 스님 mitankha@gmail.com
[1801호 / 2025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