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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무속을 ‘종교’로 만들고자 한 무녀들

조선 말기 무녀들의 생존 전략

궁중 무속의 정치적 권력화
동서남북에 세운 무당 성소
명성황후 빙의에서 교회까지
탄압과 생존 사이의 줄타기

명성황후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잠시 장호원에 피신해 있을 때 훗날 ‘진령군(眞靈君)’이라 불릴 무녀 이 씨와 인연을 맺었다. 왕비는 8월 초하루에 환궁하면서 사람의 화복과 세상의 길흉을 투시하는 재능을 가진 이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1883년 가을에 북묘(北廟)를 신축한 후 진령군을 이곳에 거주하게 했고, 그녀는 ‘진령군 대감’이라 불릴 정도로 10여 년간 대단한 권세를 누렸다.

1894년 7월에 지석영이 올린 상소에는 “신령을 빙자하여 왕을 현혹하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정을 축내고 요직을 훔쳐 농락하는 요녀, 소위 진령군에 대해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살점을 먹고 싶어 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진령군은 1894년 음력 7월에 군국기무처의 주장으로 처벌되지만, 곧 풀려나서 1898년까지는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890년대에 서양기독교와 일본불교의 포교 활동이 활발해지자 덩달아 무당의 활동도 급증했다. 무당들도 ‘종교’와 ‘종교자유’라는 서양식 개념이 만들어낸 종교적 분위기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조선 승려의 도성 진출이 허용되면서 무당들도 탄압을 무릅쓰고 도성 안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1903년 6월에 영친왕 이은(李垠)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 엄씨도 ‘현령군(賢靈君)’이라 불린 무녀 윤 씨를 위해 서대문 밖 이궁동(二宮洞)에 숭의묘(崇義廟) 즉 서묘를 신축했다. 이로써 20세기 초에 동서남북 모두에 관제묘가 존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동안 동서남북의 관제묘는 무당들을 위한 교회처럼 기능했다.

무속을 근대 종교의 위치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수련(壽蓮)이라는 무녀가 도성 안에서 활동한 시기도 1898~1910년 사이였다. 수련은 궁중에 드나들며 음악을 베풀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기양(祈禳)을 했고, 고종의 총애를 받아 거액을 상으로 받았다. 또한 명성황후가 평소에 착용하던 관(冠)을 집에 봉안하고 조석으로 밥을 올려 제사를 지냈고, 명성황후의 영이 자기 몸에 빙의했다고 주장했다. 수련이 궁궐에 출입할 때마다 마치 황후의 영이 온 것처럼 여관(女官)이 부축하고, 무예위사(武藝衛士)가 보호했다고 한다. 수련은 펄쩍 뛰며 어지럽게 춤을 추었고, 황후처럼 행동하면서 고종에게 슬피 하소연했으며, 큰소리로 궁녀를 꾸짖었고, 기도가 끝나면 늘 후한 상을 받았다. 수련의 지아비인 박원근(朴元根)도 비천한 출신이지만 군부참령(軍部參領)의 자리에 올랐고, 크고 작은 관직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인의 저지로 수련은 더 이상 궁중에 출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1906년 이후에도 수련은 정동에서 사다리를 타고 덕수궁 담장을 넘나든 것으로 보인다. 결국 1907년 9월에 수련은 신상궁(申尙宮)과 이상궁(李尙宮)이라는 궁녀와 함께 경시청에 체포되었고 1908년 3월경이 되어서야 석방되었다. 1910년에 수련은 환구단 근처 공주동에서 한국과 일본 무녀를 모아 봉신교회(奉神敎會)를 설립하고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10년 1월 13일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신교회 회관에서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를 열었다. 수련은 관운장 등의 신위를 봉안하고 그 말단에 이토 히로부미의 상을 걸었다고 한다. 동시에 수련은 내부(內部)에 봉신교회가 종교로서 포교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요청했지만 허가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일병합 전야에 무당들도 ‘음사(淫祠)’라는 이름으로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저항하기 위해 종교가 되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

[1801호 / 2025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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