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 청법분 - 2

기자명 동명 스님

가장 낮은 자세로 설법을 청하자

인간사 구제하는 일이면서
붓다를 대리하는 일이기에
알음알이 깨끗이 비워내고
믿음·공경심 갖추고 청해야

“아집과 편견과 삼독에 빠져 있을 때는 선지식을 만나고도 못 보며 설법을 듣고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참으로 설법을 듣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비워 그릇된 소견을 모두 털어 없애고 아집과 아만의 산을 허물어야 한다.”(광덕, ‘보현행원품 강의’, 불광출판사, 2015[3판], 118쪽)
설법을 듣기 전 경건하게 ‘청법가’를 부르고 청법 3배를 올려본 이들은 청법이 얼마나 숭고한지 잘 안다. 광덕 큰스님의 말씀대로 설법은 인간과 세계와 역사를 구제하는 것일진대, 청법하는 자세는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맞이하는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첫째,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설법을 청해야 한다. 알음알이란 모두 버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청법해야 한다.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법사가 어느 정도 아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마음이어서는 안 된다. 빈 컵이어야 물을 채울 수 있듯이, 마음을 비우고 설법을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가장 낮은 자세로 설법을 청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법자가 자신보다 법랍이 낮거나 지위가 낮거나 학식이 모자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청법자는 설법자에게 가장 낮은 자세로 청법해야 한다. 법을 설하는 이는 평범한 개인이 아니라 붓다이자 최소한 붓다의 대리인이다. 그러므로 설법자가 누구이건 가장 낮은 자세로 청법해야 한다.

성철 큰스님은 당신을 친견하러 오는 불자들에게, “나를 보려거든 삼천 배를 하고 오라”고 하셨다. 삼천 번의 절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충분히 낮추는 것에 진정한 진리가 있음을 절하면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법사를 믿고 공경해야 한다. 어떤 법사를 모셨건 대중의 합의로 모신 법사를 절대적으로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을 청해야 한다. 흡족하지 않은 법사라 할지라도 그는 이 세상에 오직 한 분밖에 없는 법사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의 설법을 경청할 준비를 해야 한다.

쭐라빤타까는 ‘먼지 닦기’라는 뜻의 라조하라낭(rajoharaṇaṃ)이라는 합성어 하나를 외는 것도 벅찼던 바보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한 그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아라한이 되자, 부처님은 의사 지와까에게 공양청을 받은 후 쭐라빤타까에게 설법하게 한다. 아무리 아라한이 되었다 해도 그가 설법을 제대로 할까 싶지만, 그의 설법은 훌륭했다. 불교 역사상 최고의 바보 성자도 그러할진대, 청법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할 법사를 무조건 믿고 공경해야 한다.

넷째, 설법을 들을 대중을 충분히 모으고 청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설법을 들을 경우도 있겠지만, 대중이 설법을 듣기로 했다면 설법의 취지에 맞게 경청할 대중을 충분히 모으고 청법해야 한다.

다섯째, 설법할 시간과 장소를 적당히 마련해 놓고 청법해야 한다. 대중이 많이 모이는 시간과 설법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마련하여 법사가 가르침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한 후 청법해야 한다.

‘금강경’ 13분에서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일 뿐이다”라고 하셨듯이, 부처님께서는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도 결국 말씀으로 전할 수밖에 없다. 말 자체가 진리는 아니지만, 말은 진리를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설법을 청하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 더 중요하다.

동명 스님 불광교육원장 dongmyong@hanmail.net

[1802호 / 2025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