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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깜냥에 맞게 도움 받는 경전

기자명 혜민 스님

4. ‘법화경’이 경중의 경인 이유

보신불 이야기가 경전 포인트
깨달음 추구하면 깨달음 주고
보신불이 미묘한 모양으로 나퉈
인연 있는 중생 성불 길로 안내

처음 ‘법화경’을 만나서 책을 읽듯이 쭉 한번 읽어보면 도대체 왜 이 경전이 부처님 경전 가운데 최고라고 스스로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바로 안 될 수 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유마경’처럼 궁극적 실상의 철학적 가르침을 뚜렷하게 전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읽어보면 처음 들어보는 여러 부처님들이 계속 등장해 자신들의 불국토에서 있었던 보살 제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게 뭐가 뭔지 헷갈릴 수 있다. 

물론 ‘법화경’ 안에도 성불의 길이 성문, 연각, 보살의 세 가지 길이 아닌 본시 하나의 길 밖에 없다는 일승 법문이 뚜렷하게 있긴 하지만, 그 가르침을 빼고는 다른 보살들이나 아라한 제자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말법시대에 ‘법화경’을 보호하고 중생들을 이익하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주제의 이야기나, 다보탑 안에 계시는 다보 부처님께서 우주를 다니시면서 ‘법화경’이 독송될 때 경전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나타나시겠다는 종류의 이야기가 다 인 것처럼 보인다. 왜 이런 우주적 판타지 같은 스토리가 들어 있는 경전이 본인 스스로를 경전 가운데 최고의 경전이라고 주장하는지 ‘법화경’ 독송을 해 보지 않으신 분은 좀 의아해 하실 것이다. 

그런데 신심을 가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화경’을 독송을 해 보면 그 답을 알 수가 있다. 바로 그 이유는 ‘법화경’은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같이 법신 부처님에 대한 공의 실상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니고, 그 공 자체가 놀랍게도 자비한 마음이 있어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보살로 나오는 이야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즉 ‘법화경’은 철저하게 법신(法身) 부처님보다는 보신(報身) 부처님들의 이야기가 경전의 포인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보신 부처님이 법신 부처님과 무엇이 다르기에 ‘법화경’에서 자신을 최고의 경전이라고 칭하는 근거가 되는 것일까?

법신 부처님은 시방 어느 곳에도 안 계시는 곳이 없지만 그 모양을 찾아보려면 찾을 수 없는 무형상의 부처님이시다. 이에 반해 보신 부처님은 모양이 없는 법신 부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중생들이 볼 수 있도록 자비심을 내셔서 미묘한 모양을 가진 몸으로 나투신 부처님이시다. 더불어 그 분들은 당신 공덕의 힘으로 불국토 정토를 만들어서 인연 있는 중생들을 그곳에 태어나게 해서 성불의 길로 이끄신다. 우리가 잘 아는 아미타부처님이나 약사여래부처님이 모두 다 보신 부처님에 해당된다. 

보신 부처님들은 중생 구제를 위한 서원과 무량한 공덕의 힘으로 세상으로 나오신 분들이시라 중생이 궁극적으로는 부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미혹해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보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법화경’은 궁극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그 깨달음을 주고, 중생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보신 부처님의 보살 제자들이 이를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시기에 최고의 경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그 어떤 중생이 ‘법화경’을 독경해도 그 중생의 깜냥에 맞게 도움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픈 중생이 있으면 ‘약왕보살본사품’을 독송하면 약왕보살님이 움직이셔서 중생의 병을 낳게 하고, 지혜가 필요한 중생이 있으면 ‘묘음보살품’을 독송하면 문수보살과 함께 묘음보살의 지혜가 함께하고, 사업‧장사를 한다거나 위험한 일을 당한다거나 하면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독송하면 관세음보살님의 힘이 움직이도록 장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더불어 ‘법화경’은 지금의 말법시대에 특화된 경전이다. 왜냐면 이런 불보살님의 도움은 정법이나 상법시대와는 달리 중생의 마음이 더욱 더 거칠어지는 말법시대에 더 필요로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법화경’이 이런 중생의 여러 소원을 풀어주는 부분에 있어서 궁극적 문제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법화경’의 ‘방편품’을 보면 부처님은 온갖 방편을 동원해서 중생을 교화하시기에, 소원이 이루어져 신심이 훨씬 깊어지고 그 이후 여러 공덕을 쌓는 길로 간다면, 지혜만 있고 훈훈한 보살심이 없는 마른 지혜보단 더 수승한 깨달음의 길이라 이야기 하겠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68호 / 2023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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