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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기 전엔 상상조차 못한 참혹함 그 자체”

  • 기고
  • 입력 2023.02.21 14:54
  • 수정 2023.02.24 10:28
  • 호수 1670
  • 댓글 1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 보내온 편지2

‘화이트 헬멧’ 실무자들과 만나 지원 물품 방식 논의
누르닥에서 피자들 참상·아이들 트라우마 직적 목격
갑작스런 6.4규모 지진에 우리도 숙소에서 뛰어나와
“우리에게 맡긴 구호금 잘 쓰이도록 최선 다할 것”

2월20일 새벽, 시차적응도 제대로 못하고 일찍 잠에서 깬 우리 활동가들은 서로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인사를 나눴다.오늘 일정의 시작은 시리아 민간 구호단체 ‘화이트 헬멧’과의 실무 미팅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보고 전달방식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화이트 헬멧’ 사무실에서 사무국장, 지원팀장, 전략팀장, 대외협력팀장과 회의를 시작했다. 그들은 “튀르키예를 비롯한 시리아 정부조차도 신경써주지 않는데 이렇게 찾아와 준 한국 NGO에 감사드린다. 한국 국민들에게 늘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기도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화이트 헬멧’에 지금까지 지원했고, 앞으로 지원할 금액을 일러주고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다. 이에 ‘화이트 헬멧’ 지원팀장은 상세히 설명했다.

“우리가 시리아에 직접 설립해 운영하는 여성과 아동을 위한 모자병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지진 이전에도 늘 가난한 환자들이 붐볐지만 지금은 발 디딜 틈 없이 환자가 몰려든 상황입니다. 우선 그들에게 의약품을 지원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약품 구입과 전달 방식은 한국NGO의 결정대로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우리는 기부금이 한국 국민들의 소중한 정성이 모인 것이라는 설명과 우선 필요한 약품 내역을 정리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 자체적으로 논의한 후 가장 투명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 일행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2017년 만해 평화대상’ 회의에 참석한 굿월드자선은행 총괄이사 석문 스님이었다. 스님은 그들에게 만해 스님의 정신과 업적을 설명해준 뒤 “만해 스님께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워 뜻을 이루었듯이 시리아와 국민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여러분들의 뜻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힘내십시오”라고 격려했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화이트 헬멧’ 사무실을 나왔다.

숨 돌릴 틈 없이 AFAD(재해대책본부)를 찾았다. 이곳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해 시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모든 피해현황과 국제NGO들에게 지원방식 및 현황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는 곳이었다.

NGO담당자는 “한국과 튀르키예는 1950년 한국전쟁에서 쌓은 우정을 2002년 월드컵에서 확인하고 지금까지 형제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K팝과 K드라마는 우리가 한국을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어 한국NGO가 여기에서 활동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여러분들이 어디서, 어떤 활동하는지 우리에게 알려만 주고 필요하다면 우리 직원을 붙여 여러분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지금 여기는 세 곳의 주지사님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주제하고 있는데 한국NGO가 왔다고 보고하니까 여러분들을 꼭 보고 싶어 하신다”면서 우리를 재난 상황실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만난 브루사(Brusa) 주지사는 “한국NGO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이 구호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기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석문 스님은 “도시 복원사업을 무사히 진행해 튀르키예가 하루빨리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라고 답하고 AFAD 방문 일정을 마무리 했다.

오후 3시, 그제야 늦은 점심을 먹은 우리는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재난현장 중 한 곳인 ‘누르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도시의 모든 집들과 건물은 무너져 내려앉아 이곳이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던 도시가 맞나 할 정도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무너진 집과 건물 안에는 가제도구와 살림살이들이 파묻혀 있어 그날의 참상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시민들은 모두 공터에 마련된 빽빽한 텐트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정말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동안 미얀마, 네팔, 스리랑카, 필리핀 등 많은 재난현장을 뛰어다녔지만 이곳은 최악이었다.

한 텐트촌 입구에는 공동으로 저녁을 짓고 있었는데 야채를 넣어 만든 볶음밥은 보기에도 딱딱하고 거칠어 보였다. 게다가 건더기는 거의 없는 국물이 끓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스님과 우리 일행을 보고 달려와 인사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넘게 해외 현지에서 활동하며 만나본 아이들의 표정과는 차이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함께한 시리아인 활동가 압둘와합씨는 “이 아이들은 만약 집이 있더라도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잠을 자기는 더욱 두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금 재난 트라우마가 극심하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우리는 아이들 표정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텐트촌에서 지내는 한 가족에게 다가가자 부부가 반갑게 맞으며 커피를 끓여 주었다. 아들 여섯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오던 이 가족도 한순간에 집을 잃고 추운 날씨에 텐트에서 지내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더 대접할 것이 없어서 미안해하는 모습에서 나는 그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 남성에 따르면 누르닥시는 10만명이 사는 큰 도시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날 지진으로 누르닥시에서만 1000~1200명이 죽었고 부상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너무 많은 시신들은 장례를 치르지 못해 마을회관에 그대로 안치돼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한 시간여를 대화하며 위로를 건넸다. 오후 6시가 되자 남성은 조용히 텐트 옆에 카펫을 깔고 기도를 올렸다. 하루 5번, 신께 올리는 이슬람 ‘팔라트’이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이분의 간절한 기도가 신께 닿아 이 가정의 행복과 이 도시가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일정을 마치고 오후 8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너무나 피곤해 저녁은 안 먹고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탄 것처럼 갑자기 방이 풀석풀석 흔들렸다. 거의 반사적으로 숙소 밖으로 뛰어나간다. 함께 투숙하고 있는 국제NGO 활동가들과 언론사 직원들도 허겁지겁 뛰어 나왔다. 미처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뛰어나온 사람, 내복바람의 사람들도 있었다.

진원지는 우리가 있는 베이스캠프로부터 3시간 거리의 안타키아로 규모 6.4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우리는 쉽게 숙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1시간 넘게 밖에서 서성이다 들어왔지만 누구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내야 했다.

김규환 굿월드자선은행 국장
김규환 굿월드자선은행 국장

오늘 하루 정말 많은 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이번 긴급구호 활동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일은 더 많은 현장을 돌아보고 더 많은 난민을 만나 우리에게 맡긴 소중한 구호금이 잘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후원계좌: KB국민은행 506501-04-310628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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