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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막고굴 제12굴 ‘천청문경변’

기자명 오동환

천신의 뒷 모습에 투영되는 석굴 예배자의 신심

천신이 기원정사서 부처님 뵙고 문답 후 돌아가는 상황 묘사
3독 경계하고 인욕·보시·지계·지혜 강조하며 복 쌓을 것 장려
세존과 문답하는 장면 집중함으로 간결한 금언 시각화 성공

막고굴 제12굴 ‘천청문경변'. 이 변상의 가장 뚜렷한 도상 특징은 부처님과 천신이 마주보는 구도다.
막고굴 제12굴 ‘천청문경변'. 이 변상의 가장 뚜렷한 도상 특징은 부처님과 천신이 마주보는 구도다.

 

막고굴 12굴 ‘천청문경변' 부처님과 마주한 천신의 모습. 천신은 화면에서 유일하게 예배자와 같은 방향을 하며, 예배자를 경변 안으로 이끈다.
막고굴 12굴 ‘천청문경변' 부처님과 마주한 천신의 모습. 천신은 화면에서 유일하게 예배자와 같은 방향을 하며, 예배자를 경변 안으로 이끈다.

어느 날 용모가 매우 아름다운 한 천신(天神)이 한밤중에 부처님께 찾아와 여쭈었다.

“무엇을 무서운 독약이라 하며, 무엇을 치솟는 불이라 하고, 무엇을 칠흙 같은 어둠이라 합니까?” 

돈황석굴의 벽면을 가득 채운 변상들은 저마다의 화면에 부처님의 설법장면과 불국토를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상들은 대부분 대승사상의 요체를 전하는 최상승의 경전들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때로는 특별히 심오하거나 복잡한 법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간결하고도 명확한 금언에 절실히 공감한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돈황석굴의 ‘천청문경변(天請問經變)’이다. 

만당(晩唐)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제12굴의 남벽과 북벽은 갖가지 경변으로 채워졌다. 그중 북벽의 가장 우측에 그려진 경변도를 보자. 화면의 상단은 천상을 표현하고, 그 아래에는 지상의 부처님 설법 회상을 표현하였다. 천상에는 중국식 건축물로 구성된 궁전이 그려졌고, 아래의 설법도에서는 중앙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다. 그 앞에는 기악과 무희들이 법회를 찬탄하는 연회를 펼치고 있다. 그 아래 화면의 양쪽에는 각각 부처님이 마주보며 앉아있다. 이와 같은 하늘 궁전과 지상 법회의 구도는 어딘지 익숙하다. 이러한 구도는 바로 상단에 ‘미륵상생경’의 도솔천을 그리고, 화면 하단에 ‘미륵하생경’의 용화삼회(龍華三會)를 표현한 미륵정토경변에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맞은편 남벽에 그려진 미륵경변과 비교해보면, 구도뿐 아니라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서도 너무나도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양자의 화면이 구별되는 유일한 특징은 하늘을 주재하는 남벽의 벽화에서 하늘 궁전을 주재하는 이가 보살 형식을 갖춘 미륵이 아니라 품이 넉넉한 도포를 걸친 천신이라는 점이다. 하늘 궁전의 아래 우측에는 천신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장면이 보이고, 좌측에는 다시 하늘로 돌아오는 장면이 보인다. 천신은 어디를 다녀오는 것일까? 지상에서 벌어진 법회에서 기악과 무희들의 연회 장면 아래에 보관과 의복을 유려하게 갖추고 부처님을 향해 정좌해 있는 천신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과 문답하는 천신, 이것이 이 벽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천청문경’의 가장 뚜렷한 도상적 특징이다. 

현장(玄奘)에 의해 번역된 ‘천청문경’은 총 600여 한자(漢字)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간결하다. 어느 날 밤 문득 매우 아름다운 용모의 천신이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와서 아홉 차례 질문을 올린다. 부처님은 답을 주신다. 답을 모두 들은 천신은 매우 기뻐하고는 사라진다. 이러한 형식과 설법의 내용은 ‘아함경(니까야)’과 같은 초기 경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런 이유에서 ‘정원석교록’이나 ‘개원석교록’과 같은 당시의 문헌에서도 이 경전을 소승경전으로 분류하였다. 

이처럼 간략하고 소승적 성격이 다분한 경전이 어떻게 당시 불교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던 다양한 대승경전들과 함께 변상으로 장엄되었을까? 돈황석굴에서 천청문경변은 성당(盛唐) 시기에서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150여년간 총 38폭이 그려졌고, 장경동의 돈황문서에서는 20여편의 필사본과 4건의 주해서(‘천청문경소’)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적어도 돈황지역에서 이 경전의 유행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돈황에서 ‘천청문경’의 유행은 현장의 유식종(법상종) 제자들이 돈황에서 활동한 이력과 관계가 있다. 장경동에서 발견된 ‘천청문경소’는 현장의 제자 문궤(文軌)가 편찬한 주해서이다. 문궤는 ‘천청문경’을 “삼계의 작용은 모두 일심(一心)”이라는 유식사상에 의거하여 주해하였다. 유식종의 권위자인 담광(曇曠)은 장안의 유식종을 돈황에 전파한 승려로 알려졌다. 그의 영향으로 돈황에는 유식종을 따르는 무리가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돈황에서 승통을 지낸 홍변(洪辯, 막고굴 제17굴의 주인공)이다. 그는 “유마와 유식이 처음이자 끝이다”라고 할 정도로 유식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천청경문’의 내용은 복잡한 유식의 사상을 온전히 담기에는 너무나도 짧기 때문에, ‘천청경문’이 단지 유식종의 영향으로 돈황에서 유행하였다고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경문의 간소함과 명확함은 그 자체가 수행 및 생활의 명확한 실천 덕목으로서 수행자 혹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는지도 모른다. 

“탐욕은 무서운 독약이며, 성냄은 치솟는 불이요, 무명은 칠흙 같은 어둠”이라는 부처님의 대답은 삼독의 해악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베푸는 것이 곧 이익을 얻는 것이라 이름하며, 인내는 견고한 갑옷과 투구이고, 지혜는 예리한 칼과 몽둥이”는 비유에서 보시와 인욕과 지혜가 강조된다. 경전은 문답 속에서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여 탐·진·치 3독을 경계하고, 인욕·보시·지계·지혜를 강조하며 복을 쌓을 것을 장려한다. 

12굴의 ‘천청문경변’은 경문에서 사용된 비유들을 애써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세존과 마주하며 문답을 주고받는 그 장면에 집중할 뿐이다. 이점은 ‘천청문경변’이 주는 또 하나의 간결한 시각적 금언이다. 화면에서 천신은 세존을 마주하고 있지만, 경변을 바라보는 예배자의 입장에서는 천신의 뒤통수 만을 볼 뿐이다. 이것은 천신이 예배자에게 보여질 대상이 아닌 예배자와 같은 입장임을 암시한다. 즉 부처님을 마주한 천신의 자리는 곧 예배자의 자리인 것이다. 이제 예배자의 시선은 변상 전체를 객체로 바라보는 구경꾼의 자리에서, 회상의 대중들 사이에서 부처님을 마주한 동참자의 자리로 전환한다. 그 자리에서 예배자는 천신에 이어 열 번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현실의 고민이던, 진리의 갈구이던. 예배자의 마음에 ‘천청문경변’이 최고의 변상으로 자리잡는 순간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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