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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막고굴 제55굴 ‘밀엄경변’

기자명 오동환

밀엄의 세계 표현한 고대 돈황의 독창적 창작물

인도·중앙아시아·중국 등에서도 밀엄경변 제작 사례는 없어
누각·공중악기·가릉빈가 등 서방정토 대표 도상 차용해 표현
“모든 부처 머무는 밀엄정토, 아미타 정토와 다를 바 없을 것”

막고굴 제51굴 밀엄경변.
막고굴 제51굴 밀엄경변.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욕계·색계·무색계와 무상계까지 초월하셔서, 일체법에 자재하여 장애가 없는 신족통의 힘으로 밀엄세계에 머무셨다.”

북송시대에 조성된 막고굴 제55굴 동벽 좌측에 조성된 경변도는 중앙의 주존불을 중심으로 다수의 보살과 호법 성중이 운집한 채 법회를 여는 장면을 표현하였다. 그 앞에 방형으로 조성된 연못가에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일곱의 가릉빈가가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설법도의 상단은 화려한 궁전과 누각으로 장엄되었으며, 하늘에는 악기들이 떠다니며 스스로 묘음을 낸다. 그 사이사이로 타방의 불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법회에 참석하러 오는 장면들도 보인다. 

이러한 화면구성은 이미 낯설지가 않다. 궁전과 누각, 공중의 악기, 가릉빈가 등의 장면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대표하는 도상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단에 쓰인 방제는 이곳이 서방정토가 아니라 ‘대승밀엄경’에 근거한 밀엄(密嚴) 정토임을 밝히고 있다.

‘대승밀엄경’은 약 3~4세기경 인도에서 유통되었고, 7~8세기 무렵 당(唐)으로 전해져 한역되었다. 한역 경전은 먼저 685년 지바하라(地婆訶羅)에 의해 번역되었고, 765년 불공(不空)이 지바하라 역본의 오류를 수정한 신역본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장경동 돈황문서에서 발견된 61건의 ‘대승밀엄경’의 필사본들 중 대다수는 지바하라 역본에 근거한 것이어서, 당시 돈황에서는 지바하라 역본이 주로 유행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대승밀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금강장보살과 여실견보살의 요청에 응하여 밀엄국의 무구월장전에서 밀엄법회를 펼친 내용을 담았다. 밀엄에 있는 사람들은 “일체가 부처와 같아 찰나의 무너짐을 초월하였고, 언제나 삼매 가운데 노닌다”고 하였다. 화엄종 대사인 법장(法藏)은 ‘대승밀엄경소’에서 “밀엄국의 사람들은 인·법 이무아(二無我)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며”, “밀엄묘토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으므로, 청정하다고 이름한다”고 밝혔다. 

‘대승밀엄경’의 요의는 제법(諸法)과 심식(心識)의 변화에 대해 밝히는 것이며 만물이 곧 유심(唯心)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세존과 금강장보살과 여실견보살은 서로 문답을 통해 여래의 체성(體性)은 근의 경계와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며, 또한 오온의 계처(界處)를 떠난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도 아니어서, 불생불멸하고 청정무구함을 밝힌다. 반드시 오법(五法), 삼성(三性), 팔식(八識), 이무아(二無我) 등의 법상(法相)을 통달할 것을 권하며, 만법이 오직 식[唯識]이라는 부처님 교리를 통달하면, 두루 밀엄국에 나서 무량한 수명을 얻을 수 있다고 설한다. 규기(窺基)가 ‘대승밀엄경’을 법상종의 6대 소의경전 중 하나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내외의 일체 세간은 모두 유심(唯心)이 현현한 것”이며, “내외의 일체 물질과 보이는 것은 오직 자심(自心)”이라는 관점은 ‘능가경’과 상통한다. 경에서는 밀엄불국토가 “모든 관행인(觀行人)의 주처”이자 “정정인(正定人)의 주처”임을 강조하는데, 관행인과 정정인은 모두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돈황의 저명한 선사인 마하연(摩訶衍)도 ‘밀엄경’을 중시하였고, 소의경전으로 삼기도 하였다.

돈황석굴에 밀엄경변이 그려진 것은 토번의 점령기(766~835)에서 시작하여 토번이 돈황에서 물러나고 귀의군이 통치하던 시기까지이며, 그 사이에 막고굴 제85굴(晩唐), 제150굴(晩唐), 제61굴(五代), 제55굴(北宋) 등 모두 4폭의 벽화가 그려졌다. 

돈황의 다른 경변도에 비해 비록 많은 수가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고대 인도나 중앙아시아는 물론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밀엄경변이 제작된 사례가 없으니, 밀엄경변은 고대 돈황의 종교와 예술의 독창적 산물로서의 가치가 높다. 그렇다면 왜 화사(畫師)는 밀엄경변을 ‘밀엄경’ 만의 독자적인 도상을 창출하는데 주저하고 서방정토의 도상을 차용하였을까? 

밀엄은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불국토로서 “모든 부처님 세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계”이며, “모든 부처가 상주하는 곳”이며, 중생의 세계에서는 그 화신(化身)이 현현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화사는 밀엄정토는 결국 아미타불의 상주처이기도 하므로, 서방정토와 차별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서방정토 도상의 차용은 경변 형식의 정형화의 영향이 아닌 화사의 의도적인 안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밀엄경’에는 많은 비유고사가 나온다. 예를 들어, 간달바성의 비유, 도자기공이 병을 만드는 고사, 환화로 사람과 말을 만드는 비유 등이다. 이와 같은 비유들은 대체로 ‘능가경’의 비유와 대동소이하다. 능가경변의 많은 비유고사는 화사의 창작성에 의하여 벽화로 표현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화사의 상상을 가미한 것이다. 그러나 밀엄경변에서는 ‘뱃사공의 비유’의 예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림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밀엄경’의 가장 뚜렷한 교리적 특징 중 하나는 여래장과 아뢰야식을 둘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에서 설하길, “여래장은 곧 아뢰야이니, 그릇된 앎으로 인하여 이를 알지 못한다. 여래의 청정한 장식과 세간의 아뢰야는 금과 반지의 관계 같아서 더욱 차별이 없다”고 하였다. ‘밀엄경’의 설법에 의하면, 여래장은 청정무위의 진여심이라 하고, 아뢰야식은 생사윤회의 근본이라고 한다면 양자는 서로를 함장하는 관계이며, 진여문과 생멸문이 둘이 아닌 중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경은 말미에 다음과 같이 설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지니, 아뢰야식을 곧 밀엄(密嚴)이라 이름합니다.”

광명변조의 대일여래가 상주하는 곳,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3독이 끊긴 청정무구의 자리는 다름 아닌 나의 마음에 내재함을 일깨우는 구절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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