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수륙재 관련 문헌자료들을 중심으로 이와 연계된 감로탱의 도상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대승사상의 의례와 나아가 중생 구제의 실천적 세계관까지 조명하는 새로운 시도의 연구서다. 방대한 감로탱의 도상들을 취합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시도하기 힘든 방대한 작업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상과 문헌들을 비교하며 다시 불교민속학과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저자의 노력은 이 책이 왜 연구 시작 10여년 만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대중 융합성이 강한 우리나라 불교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의례가 바로 수륙재다. 수륙재는 번뇌로 타오르는 아귀들을 위한 구제의식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유주무주의 외로운 영혼들을 모두 포함하는 대승적 구제로 확대됐다. 즉 수륙재는 세계와 대상, 장소와 시기를 한정하지 않는, 언제든 설단 건립을 통해 법의 연회를 베풀고 일체 존재를 구제할 수 있는 장이었다.
이러한 수륙재의 특성에 주목한 저자는 조선불교의 중흥기를 연 문정왕후와 허응당 보우 스님에 이르러 사찰에서 특히 많이 행해졌던 왕실 주도 ‘재 형식의 제사’ 즉 수륙재에 대한 각종 자료와 수륙재 의식집의 판본 연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륙재의 의례화인 감로탱이 어떻게 등장했는지와 그 전개 과정을 조선후기까지 확대해 살펴 보았다. 감로탱에 그려진 다양하고 흥미로운 도상들이 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시대적으로 대조하고 분석하며 감로탱 속 민중의 생각과 바람들까지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감로탱’에 ‘감로’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의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조선시대 많은 문헌사료들이 수륙재를 일반적으로 지칭할 때 ‘시식(施食)’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고 있는데 이는 수륙재 의식 설행의 주요 대상과 목적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 시식의 구체적 성격을 상징하는 핵심이 바로 감로이며 감로탱에는 시식이라는 의식절차를 통해 일체의 구제 대상들이 번뇌와 갈애에서 벗어나 청량한 감로를 얻는 과정이 도상으로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수륙재의 과정과 각 의식의 교학적, 의례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서는 조선 후기 전국의 사찰에 등장하는 감로탱의 도상학적 분석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 책이 갖고 있는 독보적 특성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저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수륙재 현장에 십여 년 동안 실제로 참여한 불교미술사학자다. 수륙재의 대중성에 주목하고 있는 저자는 대승사상에 입각한 조선시대 수륙재 의식집의 다양한 판본들에서 재의 성격과 개념들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의식절차와 동선들을 실질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당시 불교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조선시대 수륙재와 우란분재와의 영향관계를 교학과 신앙에 의거해 체계적으로 분석했으며 고승들의 의식집 편찬을 비롯해 어산의 이력까지 추적해 이 시기의 기본적인 어산사를 처음으로 복원해 낸 것도 이 책이 이룩한 뜻깊은 결실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78호 / 2023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