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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거울 속의 물고기

식이라는 거울 깊은 곳엔 물고기가 잠자고 있다

거울에 나타난 영상이 거울에 속하듯 모든 대상은 식에 내재
때 되면 깨어나 거울 표면에 뚜렷한 자기 선·색깔 드러낼 것
철로 된 커다란 새가 현실 됐듯 상상하면 그것과 마주할 수도

우리 업의 거울에선 흐릿하고 비슷한 영상들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사진은 전등사 업경대. [문화재청]
우리 업의 거울에선 흐릿하고 비슷한 영상들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사진은 전등사 업경대. [문화재청]

미륵의 후예들 삶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내 앞에 놓인 저 어마어마하고 불가사의한 세계가 실은 모두 나의 식(識) 안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팎의 관념을 흔들어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제8아뢰야식이다. 나는 이전 글 곳곳에서 이 식에 대해 한마디씩 말하였지만, 이것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길 꺼려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 이름을 자주 부르다 보면 필시 그것을 마치 ‘나[我]’인 것처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 점을 우려하였기에 그 식에 대해 오직 밀의(密意)로만 짧게 설하였다(‘해심밀경’의 ‘심의식상품’ 게송). 그래서 차라리 한 손에 찻잔을 들고 간간이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몇 개의 은유적 표현에 의지해서 조금은 가볍게 그 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이야기가 허황된 말이 아니라 영감을 받은 자의 목소리로 들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먼저, ‘성유식론’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겠다. 제8아뢰야식에 대해 가장 자세히 설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장 역으로 알려졌지만, 전하는 비화에 따르면 그의 특출난 제자 규기의 주도로 편역된 것이다. 규기는 스승에게 전수받은 또 하나의 비의적 학문이었던 불교 논리학[因明]의 규칙을 염두에 두면서, 인도의 10대(大) 유식논사의 유식설을 취사선택하여 체계적으로 또 ‘은밀하게’ 편집해 놓았다. 그 결과, 지금으로부터 천오백여년 전에 조금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열광과 자괴감을 동시에 안겨 준 난해한 책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규기가 한 일은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는 우리의 지성을 시험하기 위해 유식의 정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어떤 문구가 적힌 쪽지들을 건네주면서 우리가 그것을 힌트로 삼아 정원의 땅 밑에 묻힌 보물들을 찾게 한다. 우리가 애써 찾은 보물이란, 그 쪽지의 문구들이 범한 논리적 오류가 무엇인지를 정성껏 새겨놓은 각양각색의 돌멩이들이다.’ 아마도 이런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 같은 전공자는 논리학을 가르치는 돌멩이들을 찾느라고 유식설의 심오함을 아직 만끽하지 못하였다. 이 책의 지나친 이론적 정교함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그 책에 급격히 흥미를 잃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식(識)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이 ‘성유식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저 제8아뢰야식에 대한 다양한 은유들이다. 사실 그 책에서 인정하듯, 아뢰야식은 본래 ‘불가지(不可知)’하다. 인식 작용이 극히 미세하고, 인식 대상은 극히 광대하여,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작동해도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논리적 설명보다는 어떤 은유에 의지해서 더 쉽고 빠르게 그 불가지한 식의 근처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 식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 ‘제8’이라는 서수를 달고 있는 저 근원적인 식은 정확한 이름이 없고 여러 개의 가짜 이름으로만 불린다. 미륵의 후예들에 따르면,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은 본래 가짜 이름이고, 그 가짜 이름을 달리 말하면 ‘은유(범어 우빠짜라)’라고 한다. 가령 ‘아뢰야식’은 장식(藏識)으로 번역되는데, 그 이름은 마치 종류를 불문하고 잡다한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물류창고’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또 ‘일체종자식’은 마치 세상의 모든 씨앗을 보관하고 있는 ‘거대한 종자보관소’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만약 정토에 머무는 자라면, 그에게는 더 이상 세속의 물건이나 곡식 알갱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그 자리에 청정한 지혜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제8식은 ‘무구식(無垢識: 때가 없는 식)’이라 불린다. 한 문학가가 자기에게 천국은 마치 모든 지혜의 책들이 보관된 거대한 도서관처럼 여겨진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내가 무구식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 그러하다. 그리고 그 도서관에는 틀림없이 정토의 주인이 설한 논리학에 관한 책도 꽂혀 있을 것이다(‘해심밀경’의 ‘여래성소작사품’).

또 이 식의 고유한 작용을 암시하는 두 가지 은유적 표현이 있다. 그것은 ‘물’과 ‘거울’의 비유다. 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거울은 밝게 비춘다. 물의 비유에 따르면, 마치 ‘사나운 물살[瀑流]’처럼 그 식은 매 순간 끊임없이 무거운 업의 짐을 싣고서 밀려온다. 그 물살 아래로는 물고기가 잠겨서 떠내려가고 있다. 그 ‘물고기’는 종자(種子)를 비유한다. ‘종자’ 또한 은유적 표현으로, 무시이래로 직전 순간까지 축적된 기억의 종자들이 아뢰야식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연을 만나면 바로 과를 생한다. 거울의 비유에 따르면, 마치 ‘영상을 띤 거울’처럼 그 식에는 항상 어떤 대상들이 나타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그 식은 자기의 종자와 자기 몸 그리고 기세간(자연계)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다. 미륵의 후예들은 말하길, 거울에 나타난 영상이 거울에 속하듯, 그 식에 알려진 대상들이 모두 그 식 안에 있다고 한다. 만약 바깥의 물체가 거울에 영상을 투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실재론자일 것이다. 그와는 달리, 미륵의 후예들은 아마도 청동 거울이나 유리 거울이 아니라 물과 같은 투명한 재질로 된 어떤 거울을 생각할 것이다. 그 거울 깊은 곳에는 물고기가 잠자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깨어나서 거울 표면에 뚜렷한 자기의 선과 색깔을 드러낼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에 대한 나의 상상을 하나 덧붙여보겠다. 나는 어디선가 ‘정토에서는 어느 쪽에 있든 모두가 다 부처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서 설법을 듣는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은 이런 의미인 것 같다. ‘정토에서는 흐릿한 거울을 통해 어슴푸레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하게 보고 듣는다.’ 그때 저 거울은 다채로운 삼라만상의 영상들을 일시에 환히 드러내는 ‘커다란 둥근 거울[大圓鏡]’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의 ‘업의 거울[業鏡]’에서는 흐릿하고 비슷한 영상들이 반복해서 재생된다. 왜냐하면 그 거울은 셋이면서 하나인 어떤 것, 그러니까 과거에 지은 모든 행위의 흔적[果]이자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조짐[因]으로서 동요하고 있는 현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용기를 내어 신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면, 하늘을 나는 철로 된 커다란 새가 현실이 됐듯 언젠가 그 거울로부터 거대한 돌고래가 튀어나와 창공을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지금 그런 돌고래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우영우(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의 거울에서만 나타나지만, 우리 모두 하늘을 나는 각양각색의 돌고래들과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681호 / 2023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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