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생사를 넘나드는 탈북 장벽을 넘어 한국에 정착한 김혁일(34)씨는 한순간의 사고로 또 다른 장벽에 갇히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지인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달리던 속도 그대로 건물과 충돌한 것. 즉시 응급실에 실려가 24시간 대수술을 받았으나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절망적인 대답에 아내 김은주씨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가족은 남편과 15개월 아들이 전부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고요. 그이 없이는 지금 생활을 버틸 자신이 없어요.”
수술을 받던 중 호흡 부전과 함께 의식이 급격하게 저하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남편을 포기할 수 없던 아내는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기를 업고 꼬박 한 달을 지극정성 간호했다.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을까. 남편이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그러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국에 넘어오면서 앓은 폐결핵이 재발했다. 부러진 다리와 관절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뇌경색도 발생해 병환이 더욱 악화됐다. 3개월의 수술과 치료를 거친 현재 재활 치료를 남겨두고 있지만 뇌경색으로 인한 운동기능 및 감각기능 저하, 언어기능 장애로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화장실마저 가기 힘들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1억원에 달하는 병원비다. 김씨와 그의 아내는 정착지원금 전액을 탈출을 도운 브로커에게 지불했다. 때문에 하나원에서 지정해준 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 사고 당시 운전대를 잡았던 지인이 술에 취한 상태였음이 드러나 보험마저 적용되지 않았다. 아내 김은주씨는 “남편은 북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며 학업과 야간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던 그가 누워서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기초생활비로 육아와 함께 1억이 넘는 병원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앞날이 막막하다”고 했다.
최근 세계농업기구 등이 발간한 ‘2021년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영양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 인구 비율은 2020년 42.4%에 달한다. 김씨 가족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삶을 이어오던 그는 한 번이라도 배불리 먹는 게 꿈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고 남몰래 장터에 나가 물건을 팔아봤지만 옥수수를 섞은 밥과 소량의 김치, 된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었다. 이마저도 남은 식량이 부족할 땐 물을 많이 넣어 죽으로 먹었다. 하루 두 끼 이상 먹기 힘들었다. 오랜 굶주림에 지친 그는 결국 브로커를 통해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의 여러 도시를 거쳐 한국 대사관을 통해 입국하기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길바닥 노숙과 비박을 일삼으며 입국한 그는 하나원에서 정착적응교육을 받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고 동국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탈북민 출신의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은 그는 생계를 위해 야간, 새벽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사고를 당하던 날에도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시켜줄 것이란 기대감에 지인을 따라 나선 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했지만 빚더미에 깔린 그의 가족에게 불자들의 자비 온정이 간절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683호 / 2023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