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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수행이론의 총망라(56)-성불 관련; 각론③

마음이란 요술 같고 세간은 꿈 같아

부처님께서 직접 말한 십정품
훈고학자들은 본분이라 과목
논의 구조 훈고하는 방식으로
표방‧해석‧맺음 3단 구조 사용

‘화엄경’ 구성작가는 드물지만, 부처님을 등장시켜 직접 말씀하시게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데 ‘십정품 제27’에도 그런 방식이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십정품’의 이 대목을 훈고학자들은 ‘본분(本分)’이라고 과목명을 붙였다. ‘본분’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열 가지 큰 삼매를 설하면 어떤 공덕을 얻는지를 말씀해주신다. 둘째는 구체적으로 열 가지 삼매의 이름을 나열하신다. 셋째는 선정의 뛰어난 덕을 찬탄하신다. 넷째는 대중들이 법문 듣기를 원하니 보현 그대는 어서 법문을 설하라고 권하면서 마무리하신다. 

지난 호에서는 둘째 부분 즉, 열 가지 큰 삼매 이름을 소개하면서 끝을 맺었다. 이제는 보현보살이 등장하여 구체적으로 열 가지 큰 삼매를 설명할 차례이다. 경학에서는 이 부분을 ‘설분(說分)’이라 이름 붙인다. 지면 관계상 첫째의 보광명대삼매(普光明大三昧; 넓은 광명 큰 삼매)만을 사례로 삼아, ‘설분’의 구조적 얼개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기로 한다. 

화엄 경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논의 구조를 훈고하는 방식으로 표(標; 표방), 석(釋; 해석), 결(結; 맺음)의 3단 구조를 사용한다. 이는 인도철학의 논의 전통이다. 주장하는 당사자인 입론자(立論者)와 그 주장을 상대하는 대론자(對論者) 사이에, 먼저 논의 주제 설정을 해야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아젠다 세팅; Agenda Setting’을 하는데, 이게 ‘표(標; 표방)’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보충해두자면, ‘표’와 ‘결’의 명제 구성 형식과 내용은 같다. 다만 ‘표’는 입론자는 주장하지만 대론자는 아직 인정하지 않은 지식임에 반해, ‘결’은 입론자와 대론자 양자가 서로 공감한 지식이다. 

주장을 논증해 가는 부분인 석(釋; 해석)에는 상대의 공감을 끌어내는 작업이 다섯 단계로 촘촘하게 진행된다. 대론의 주제인 표(標; 표방)로 제시한 ‘넓은 광명 큰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①무궁무진의 지혜를 갖춰야 하고, ②무궁무진의 마음을 먹어야 하고, ③자유자재로 명상에 들 수 있어야 하고, ④아주 섬세한 지혜를 갖추어야 하고, ⑤세속을 멀리해야 한다.

①에서 열 가지 지혜가 거론되는데, 부처님의 출현 관련 지혜, 중생들의 변화 관련 지혜, 세계가 무상하고 공한 줄을 아는 지혜, 법계에 들어가는 지혜, 보살을 잘 지도하는 지혜, 보살들이 수행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지혜, 일체법의 무상 무아 공 연기를 아는 지혜, 마음을 집중하는 지혜, 깨닫겠다는 지혜, 원력이 그것이다. ②에서도 열 가지 마음가짐이 소개되는데, 첫째가 중생구제의 마음이다. 지면 관계로 생략하지만, 내용은 ‘보현보살의 10대 행원’과 유사하다. ③에서는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삼매에 드는 양상 열 가지를 소개하는데,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④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므로 운허 스님 ‘한글대장경’ 번역 본문을 인용하여 독자들과 경의 본문을 공유한다. “마음이란 요술과 같고, 모든 세간이란 꿈과 같고,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시는 것이란 영상과 같고, 모든 세계는 변화한 것과 같고, 음성과 말은 메아리와 같은 줄을 깊이 깨닫고, 실상대로의 법을 보고 실상대로의 법으로 몸이 되고,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한 줄을 알고, 몸과 마음이 진실한 자체가 없음을 알고, 몸이 항상 한량없는 경계에 있고, 부처님의 지혜와 광대한 광명으로 온갖 보리의 행을 닦는다.”

⑤도 운허 스님의 번역 본문을 인용하여 독자들도 경의 맛을 접하도록 했다. “이 삼매에 머물면, 세상을 넘어서고 세상을 멀리 여의어서 의혹하게 할 이도 없고 무색하게 할 이도 없느니라. 불자여, 마치 몸속을 관찰하여 부정하다는 관[不淨觀]에 머물면 몸이 모두 부정한 줄을 보게 되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이 삼매에 들어서 법의 몸[法身]을 관찰하며, 여러 세간이 그 몸에 들어감을 보며, 그 가운데서 모든 세간과 세간의 법을 분명히 보지마는 세간과 세간의 법에 모두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상을 잘 살펴보면, ①과 ②는 선정의 방편이고, ③은 선정의 체(體)이고, ④와 ⑤는 선정의 용(用)임을 알 수 있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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