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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하학과 연기법

불교전통 기하학에선 완전성에 집착하지 않아

그리스 기하학은 형상들의 공통된 형식 완전성에 주목
불교전통은 변형 추상을 통해 산출되는 다양성이 관심
두 점 연결하는 선 고정되지 않고 얼마든지 변형 가능

미얀마의 쉐모도. 오목한 점근선을 갖는 오목볼록한 윤곽선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
미얀마의 쉐모도. 오목한 점근선을 갖는 오목볼록한 윤곽선이 특징이다. [위키피디아]

기하학은 추상화를 요체로 한다. 추상화에 의해 구성되며, 추상화를 가동시킨다. 추상은 두 가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하나는 하나의 곡선이나 도형을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형상들에 공통된 형식을 추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기하학은 공통형식을 추상하여 원, 삼각형, 사각형, 혹은 구, 원기둥, 삼각뿔 같은 ‘보편형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 기하학적 형식이란 모든 형상들에 공통된 형식이라고 여겨지며, 기하학은 지역이나 조건과 무관한 초월적 형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공통 형식을 추상하는 경우에도 기하학이란 구체적인 형상에서 추상되는 형식이기에, 그 형상을 조성하는 감각이나 조건이 크게 다르면 다른 형식으로 추상하게 된다. 즉 건축물이나 조각 등에서 사용하는 주된 형상이 달라지면, 추상되는 형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스의 기하학이 떠받침의 감각에 의해 추상된 것이라면, 티베트의 기하학은 매달림의 감각에 의해 추상된 것이고, 미얀마와 태국의 기하학은 상승의 감각에 의해 추상된 것이다. 추상의 조건이 다르면 같은 형태로 보이는 선이나 도형, 입체도 다른 특이성을 갖게 된다.

떠받침의 감각이 구성한 건축물에서는 수평선과 수직선이 본질적인데, 거기서도 떠받치는 기둥의 수직성이 핵심이다. 18~19세기 고전주의자들이 독립 기둥이야말로 건축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 수직선은 지붕의 무게를 견디어야 하기에 당연히 직선이어야 하고, 받치는 각도는 엄격한 직각이어야 한다. 기단과 지붕도 떠받침의 기능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면 직선이어야 한다. 따라서 떠받침의 기하학에서는 엄격한 직선주의와 직각주의가 근간이 되며, 이것이 선호하는 도형이나 형식을 규정한다. 

이러한 직선주의와 수직주의의 구도 속에서는 길이 등 어떤 성질이 주어지면 오직 하나의 형식이 얻어진다. 두 점을 잇는 선분은 오직 하나고, 특정한 길이의 변을 갖는 정사각형도, 동일한 반지름의 원도 오직 하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성’의 관념은 이로부터 나온다. 수직주의를 벗어난 사다리꼴이나 다양한 형태의 사변형은 유클리드 기하학 안에 있는 도형이지만 어떤 형식적 완전성도 얻지 못하며, 어떤 중요성도 없다. 그렇게 ‘삐뚤어진’ 도형은 삼각형으로 환원되고,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으로 다시 환원되어 계산된다. 

매달림의 감각 속에서 근간이 되는 것은 벽조차 매달리는 상부의 수평선이다. 매달리는 선이 반드시 곧을 이유는 없지만, 매달리는 것을 버티어줄 수 있는 힘을 표현하기 위해선 직선성이 요구된다. 티베트 건축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 상부의 수평선이다. 티베트에서 매달리는 것은 대개 사변형인데, 이 사변형은 직각주의로부터 자유롭다. 버티어주는 힘이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포탈라 궁의 벽이 잘 보여주듯, 벽의 세로변은 대부분 직각에서 이탈한 사선이며, 종종 살짝 안으로 흘러들어간 곡선이 되기도 한다. 아래쪽 변도 직선성에서 자유롭다. 기단을 표시하는 수평선이 종종 사라지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매달린 벽의 안정성을 위해선 수평선과 만나는 선이 그것과 둔각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수평선과의 둔각이라고는 해도 직각에서 이탈하는 허용치는 크지 않으며, 벽의 수직선이 곡선에 열려 있다고 해도 휘어짐의 정도 또한 아주 작은 크기로 제한된다. 티베트의 건축물들이 거의 동일한 형태의 준-사각형들로 조성되는 것은 선과 각의 가능한 변형의 정도가 이처럼 작기 때문이다. 

미얀마나 태국 사원을 조성하는 것은 상승의 감각이다. 태국의 사원에서 일차적인 것은 다른 입방체를 파고들고 분절하며 정점으로 상승하는 ‘기둥’들, 그 수직의 힘이다. 그런데 기둥이라고는 해도 떠받치는 게 아니라 상승하는 힘을 담지해야 하기에 이는 본질적으로 사선이다. 수직의 기둥은 똑바로 선 사선이며, 사선으로 상승하는 기둥의 한 양상을 표현한다. 이 상승하는 선은 수평선에 의해 분절될 때조차 강한 직선성을 가지며, 계단처럼 꺾인 것조차 최대한 직선적 단일성에 근접해야 한다. 그러나 상승하는 사선이 반드시 직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쩨디나 스투파를 관통하는 선은 날렵한 곡선이다. 버티는 기둥은 반드시 수직이어야 하고 직선이어야 하지만, 상승하는 기둥은 수직일 이유도, 직선일 이유도 없다. 날렵하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선은 오히려 지평선과 예각의 각도를 갖는 오목한 곡선이다. 떠받침의 기하학에선 원주조차 직선적이라면, 상승의 기하학에선 직선조차 곡선적이다. 이 곡선은 하나의 동일한 곡률을 가질 이유도 없다. 현수선이나 포물선처럼 점차 가파르게 올라가는 곡선이 좀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이 곡선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없는 곡선이다. 연속적으로 변하는 곡률을 갖는 사영기하학의 곡선이다. 기울어진 수직선이긴 마찬가지지만, 티베트의 사선이 둔각으로 내려오는 선이라면 태국의 사선은 예각으로 올라가는 선이다. 허용되는 각도도, 곡선화의 정도도 티베트보다 좀더 큰 가변성에 열려 있다. 그렇지만 올라가는 곡선이 상승의 힘을 잃지 않으려면 각도나 휘어짐에 허용되는 가변성의 폭이 아주 크기는 어렵다. 이 가변성의 제한이 다양한 형태적 변주에 어떤 일관성을 부여한다.

태국과 달리 미얀마 사원에서 상승의 힘은 건축물의 윤곽선을 통해 일차적으로 표현된다. 이 윤곽선은 대체로 현수선이나 포물선의 점근선을 갖지만, 때로는 확실하게 꺾인 선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올록볼록한 S자가 중첩된 곡선을 그리기도 한다. 율동적인 리듬과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다양한 형태와 곡률, 강도 모두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이 윤곽선은 사실상 모든 변형에 열려 있는 위상기하학적 곡선이다. 물론 이 변형은 윤곽선을 규제하는 점근선의 오목한 곡선성 안으로 제한되지만, 직선, 꺾인 선, 오목한 곡선, S자형 곡선 등 모든 형태적 변형이 가능하다. 이 상승의 기하학에서 직선은 조용히 받쳐주는 하부의 수평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상승의 속도를 늦추어주는 선도 이 수평선이다. 그리고 입체적 양감과 평면성이라는 상반되는 성분이 병존한다는 사실은 윤곽선 뿐 아니라 구체적 형상들의 가소성 또한 극대화한다. 물론 상승하는 점근선은 예각주의 안에 있으며, 오목한 곡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제한이 미얀마 사원의 형상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추상의 두 가지 다른 방향을 통해 그리스의 기하학과 이 다른 기하학들 사이에 모호한 경계선을 하나 그을 수 있을 것 같다. 직각성을 요구받는 수직선과 수평선의 직선주의에서 추상은 공통형식을 추출하는 추상을 벗어날 수 없다. 반면 원추곡선이나 위상기하학적 곡선이 주도하는 기하학은 변형의 추상기계를 향해 열려 있다. 가령 그리스의 기하학에서 원은 반지름 하나면 오직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는 반면, 원추곡선이나 위상기하학적 곡선에서는 두 점을 연결하는 선은 얼마든지 변형가능하다. 전자에서는 많은 형상들에 공통된 형식의 완전성이나 초월성이 관심사가 되지만, 후자에서는 변형의 추상을 통해 산출되는 다양성이 관심사가 된다.

동일하게 상승의 힘을 표현하려는 충동에 의해 가동되었음에도 태국과 미얀마에 다른 유형의 미학이 존재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 변형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 해도, 매달림의 기하학 또한 직각에서 벗어나는 둔각과 곡선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단 하나의 완전성이나 초월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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