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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문교부 생활

고위공직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전직 후 동국대 이사 문제 맡아
진행 과정서 큰 스님들 뵙기도
고교평준화 반대 이유로 전출
1980년 7월 공직에서 물러나

문교부로 전직한 뒤에 제일 먼저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는 조계종 종립대학인 학교법인 동국대의 관선이사들의 임기도래 문제였다. 

당시 동국대 학교법인은 내부 분쟁 문제로 정규이사가 모두 해임되고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때였다.  이사장직은 조계종 총무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던 오녹원 스님의 소임이었다. 나는 녹원 스님과 거의 매일 만나 동국대 정상화를 논의했다. 하지만 당시에 개운사(開運寺) 계열과 봉은사(奉恩寺) 계열 사이의 알력이 워낙 거세어 쉽게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었다. 

나는 하다못해 관선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던 날, 총무원에 전화를 걸어 녹원 스님께 앞으로 일주일 안에 합의된 정규이사 명단과 총장 후보자의 결정이 없으면 대학의 휴업을 명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의견을 통보했다. 그 극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소정의 기간 안에 합의된 정규이사의 명단과 이선근씨를 총장후보로 추천하는 내용을 통보 받았다. 

결국 오래 끌었던 동국대 문제는 끝을 보게됐다. 나로선 퍽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큰 스님들을 뵙고 고견을 들음은 물론, 값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나의 문교부 재직 중의 일을 낱낱이 기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랜시간이 흐른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이른바 ‘고교평준화’ 문제다. 

1979년 어느날 아침의 일로 생각된다. 장관실에서 열린 아침 간부회의 벽두에 장관께서 돌연 다음 학년도부터 고등학교 입학도 중학의 예에 따라 입학 시험제를 없애고 이른바 은행알 돌리기에 의한 평준화 입학제를 시행할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즉각적으로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등학교 평준화입학제는 고등학교 학력을 하향평준화(下向平準化)하게 돼 고등학교 학생의 학력을 저하시키고, 둘째로 고교입시평준화는 대학입학의 병목현상을 초래해 결국 학원 등 사교육을 불가피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학력저하는 대학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몇몇 국장들이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장관의 의견은 무슨 이유인지 너무나 확고하였다. 결국 고교평준화 정책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 원인이 되어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전출됐다. 그리고 고교평준화는 시행됐고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의견은 아직도 그때와 다름없다.

아무튼 나의 문교부 근무는 당초의 생각과 달리 비교적 오래 계속됐다. 결국 차관을 끝으로 전두환 정권 초엽에 끝을 맺고 나의 행정부 근무도 막을 내리게 됐다. 1980년 7월 공직에서 물러난 나는 우선 한 반년동안 푹 쉬고 싶었다.

물론 하기에 따른 일이기는 하지만 공직생활이라는 것은 퍽 피곤하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공직생활은 자기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국민 모두를 염두에 두고 해야하는 일이다. 일종의 신탁업무 실행에 비유될 만한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욕심을 부려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대표적인 일이 공직이다. 

명예와 돈을 함께 그려서는 안된다. 그 하나만을 훌륭히 해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가 되면 많은 사람이 그에 도취되고 거드름을 떠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에서 우러난 소행이다. 방문객이 고위공직자를 찾아오면 의례히 그 방의 제법 커다란 책상 앞에 앉은 방주인에게 깍듯이 경의를 표하지만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 방에 놓인 제법 크고 좋은 책상에 대한 것이고 따라서 누가 책상의 주인이 되더라도 같은 예를 표해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공직자의 생활을 잘 해내려면 늘 고달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나는 좀 쉬면서 몸도 추스르고 앞으로의 계획도 꼼꼼히 세워보기로 마음먹었다.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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