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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수행이론의 총망라(64)-성불 관련; 각론⑪

각 국토 따라 시간 단위 다 달라

사방 곳곳 보살 대중 존재 통해
보현보살과 수행하는 보살 무수
교리 양상 나눠 풀이하는 전통
당나라 시대 화엄 경학이 극치 

지난 호에서는 ‘아승기품 제30’을 소개하여 고대 인도인들의 수(數)에 관련한 발상을 볼 수 있게 했다. ‘화엄경’ 구성 작가는 제7회(총 11품) 모임을 보광명전에서 펼치는데, 이 모임에서 작가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①첫째; 전반부 총 6품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등불(等佛; 부처 되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한데, 그런 수행을 이론적으로 소개한다. 그 이론이란, 하나는 선정[定] 관련 이론, 둘은 신통[通] 관련 이론, 셋은 지혜[忍] 관련 이론이다. ②둘째; 후반부 총 5품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수행의 결과로 성취하게 될 업보’가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경학자들은 ①을 인원(因圓), ②를 과만(果滿)이라고 과목을 붙인다. 풀어서 말하면, ‘갖추어야 할 원인이 원만해지니, 그에 따른 결과가 충만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①의 ‘인원’에 해당하는 총 6품은 전후 둘로 나누는데 앞의 셋은 ‘여래현상품 제2’에서 제기한 다양한 질문을 ‘개별적으로’ 대답한 것이고, 뒤에 셋은 수행의 공덕이 매우 깊고 드넓음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독자들께서도 기왕에 ‘경학’에 관심을 두셨다면, 과목 이름을 외워 두시면 ‘화엄경’의 갈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①의 총 6품 중에서 앞의 세 품을 ‘정답전문(正答前問)’이고, 뒤의 세 품을 ‘총현심광(總顯深廣)’이라 한다. ‘총현심광’에 해당하는 세 품 중, ‘아승기품’에서는 숫자의 단위를 통해, ‘여래수량품’에서는 국토에 따라 시간의 단위가 달라짐을 통해, ‘제보살주처품’에서는 사방 곳곳에서 수행하는 보살 대중의 존재를 통해, 수많은 수행자가 긴 세월 깊고 넓게 자리이타의 보살행을 한다는 걸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래수량품’과 ‘제보살주처품’은 경전의 분량이 매우 짧다. 아래에서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일부만 인용할 텐데, 그렇더라도 독자들은 그 품(品) 전체의 내용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가 계시는 사바세계의 한 겁(劫)이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세계에서는 낮 하루, 밤 하루요; 극락세계의 한 겁(劫)은 금강견불이 계시는 가사당세계의 낮 하루, 밤 하루요; …….” 세계마다 시간의 단위가 다른 데, 그런 세계마다 보현보살과 함께 수행하는 보살이 ‘무수(無數)’하다는 것이다. ‘무수’의 뜻은 지난 ‘아승기품’에서 소개했다.

위의 인용문이 ‘여래수량품’의 첫 부분이다. 다음으로 ‘제보살주처품’은 요약해서 내용을 소개한다. 사방(四方) 곳곳마다 보살들이 수행하는 처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네 방위를 현재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외우고 있는데, 고대 인도인들은 ‘남-서-북-동’으로 남쪽에서 왼쪽으로 돌려 외운다. 방향 인식의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그사이의 간방(間方)도 설명한다. 이상의 지역은 현실적으로 실재하는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확인 가능한 지명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바이샬리, 마투라아, 마란다, 캄보디아, 진단(震旦; 중국), 소륵(疏勒; sogd), 캐슈미르, 간다라 등등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화엄경’ 경학이라는 이름으로 경전의 본문을 풀이해가면서, 과목(科目)을 자주 운운하는데, 이렇게 경전에 나타나는 교리의 양상[敎相]을 나누어 가르고[判] 또 그것들 사이의 내적 의미를 풀이[釋]하는 전통은, 중국에서 불경을 번역하던 초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 극치가 당나라 시대의 화엄 경학이다. 

‘화엄경’의 경우는 과목이 매우 많은데, 그것을 다 외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늘 책상머리에 두고 수시로 활용하는 간략한 과목표가 있는데, 그것이 ‘화엄품목’이다. 그런 공구서(工具書)를 사용하게 된 건 월운 스님 덕이다. 스님의 책상 옆 손에 닿을만한 책꽂이에는 언제나 ‘화엄품목’이 놓여있다. 허락을 받아 펼쳐보니 연필로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를 해두셨다. ‘화엄경’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살피시려는 노학승(老學僧)의 모습이 마음에는 여전하시다. 지난 8월3일의 7칠재로 소위 초상(初喪)을 마쳤다. 내년에 소상(小祥), 후년에 대상(大祥), 이렇게 만 2년으로 소위 3년 대상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는 매년 음력 4월28일 기신제(忌晨祭)로 모시게 될 것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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