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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성파’의 漢詩, 65년 만에 세상 만나다

  • 출판
  • 입력 2023.08.25 19:26
  • 수정 2023.08.28 18:56
  • 호수 1694
  • 댓글 0

온계시초
조봉주(성파 스님) 원작·성범중 역주/도서출판 통도/272쪽/2만원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한시집
16~18세에 지은 192수 수록
출가 2년 전 정리한 공책서 발췌
당시 지은 작품 수록된 시보다 많아
“젊은 날 힘입어 지금 내가 존재”

 

‘除糞松谷山
生尿石椧間
何不修本性
心閑事自閑

골짜기와 산의 솔숲에서 더러움을 없애고
돌 홈통 틈새에 오줌을 갈긴다.
어찌 본성을 수양하지 않으랴마는
마음이 한가하니 일은 절로 한가롭네.’

경남 합천군 야로면 창동마을에서 태어난 소년 조봉주(曺鳳周)는 조금 떨어진 가야면 사촌리의 서당 ‘강성재’에서 수학했다. 재동(才童)으로 불리며 당시 합천의 원로 유학자들이 참가하는 봄·가을의 시회(詩會)에 직접 참가해 뛰어난 한시 실력을 선보이며 60~70대 노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시절 10대 소년에게 자연은 시의 소재가 되어주었고 내면은 시어를 길어 올리는 우물이 되었다. 그리고 1960년 홀연히 출가의 길을 선택한 뒤 2023년이 된 지금, 소년의 시가 65년 만에 골짜기 시내를 타고 강으로 흘러 바다를 만났다.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가 출가 전 소년 시절에 지은 한시를 모은 책이 발간됐다. ‘온계시초(溫溪詩抄)’라는 제목의 이 책은 원작자인 성파 스님이 16~18세에 써놓은 것을 스님의 출가 2년 전인 1958년 2월 직접 별도로 공책에 정리해 둔 것이다. ‘온계 조봉주 시초’라고 쓴 초고본에 실린 작품 210수 가운데 펜으로 금을 그어 지운 작품 3수,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 15수를 제외하고 192수의 한시를 모았다. 

온계 조봉주 시초 공책 표지.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온계 조봉주 시초 공책 표지.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시체별로 나누면 절구 61수(오언절구 4수, 칠언절구 57수), 율시 130수(오언율시 18수, 칠언율시 112수), 고시(古詩) 한 수다. 장단구(長短句) 형식을 취한 고시는 강성재 서당의 훈장 정산(靜山) 한 선생의 덕업을 기렸다. 이 시기 성파 스님이 지은 작품 수는 현재 남아있는 것보다 3배 정도 더 많았다고 한다. 다른 학생들이 한 수 지을 때 스님은 보통 네다섯 수를 지었다는 표현에서 작품 수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회에 참가해 제출한 작품 역시 주최 측에서 돌려주지 않아 기록을 남겨 둘 수 없었다. 소년 시절 작품을 다 취합하지 못한 아쉬움이 행간에 담겨 있음이다.

온계 조봉주 시초 공책 내지.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온계 조봉주 시초 공책 내지.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한시의 우리말 번역은 성범중 울산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1956년 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인문대 및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성 교수는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 한시 관련 저서와 논문이 다수 있다. 성 교수는 “성파 스님은 소년 시절 합천의 가야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따뜻한 물이 흐르면 서식하는 물고기와 다른 수생동물이 더 안온한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며 “온계(溫溪)는 소년 시인이 스스로 설정한 삶의 지향이자 소박한 희망을 나타낸 단어로 곧 차가운 물 속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물고기가 따사로운 개울에서 오순도순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따뜻한 심성이 투영된 아호”라고 소개했다.

성파 스님. 1985년 당시.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성파 스님. 1985년 당시.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성파 스님은 ‘서언(序言)’에서 “공문(空門)에 들어오기 이전 향리의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 읊조렸던 것으로 출세간의 ‘고봉정상(高峰頂上)’도 세간의 ‘십자가두(十字街頭)’도 잘 모르던 시기라 고졸(古拙)한 구절이 더러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질박한 시구를 읽다 혹 마음속의 현묘한 거울이라도 발견한다면 그것 또한 과거와 지금의 일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하나의 다리가 되지 않겠는가”라며 “젊은 날의 시간과 노력에 힘입어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기에 버려두지 못하고 엮은 ‘투박한 시어’와 ‘산만한 착상’을 매끄러운 우리말로 옮겨주시고, 편집과 교정에 땀을 쏟아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의(謝意)를 표한다”고 전했다. 

성파 스님.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성파 스님.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1984년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지난 6월24일 ‘제40회 시상식’을 개최할 만큼 오랜 세월 시조 시인들을 격려해 왔으며 안거 결제, 해제의 법어를 내릴 때도 한시를 자주 인용할 만큼 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이어온 성파 스님. 무엇보다 ‘온계시초’는 ‘도서출판 통도’의 출판등록(2022년 10월31일) 후 첫 책이다. 이 출판사는 향후 불교 관련 연구서 발행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오는 9월 성파 스님의 원력으로 영축총림 통도사에는 경학원도 설립될 예정이어서 향후 불전 연구에 따른 출판 활동도 기대를 모은다. 

성파 스님.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성파 스님. 사진제공 도서출판 통도.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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