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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님 대하는 마음으로 산모와 태아를 시봉했습니다”

  • 무진등
  • 입력 2023.08.25 21:52
  • 수정 2023.08.28 12:35
  • 호수 1694
  • 댓글 2

이순옥 대한조산협회장

40여년간 1만명 태아 받은 베테랑…‘부모미생전’ 화두진력
산모 사경수행 등 전법, 아프리카 에스와티니 6년 봉사활동
올 2월 회장 취임 “의료법 6조 개정해 조산사 역할 키울 것”

이순옥 대한조산협회장은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시간과 인연에 최선을 다하자’를 좌우명으로 수행자와 같이 업무에 임하고 있다. 조산사로서 또 불제자로서 산모의 안심(安心)과 태아의 건강한 정신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권하고 있다.
이순옥 대한조산협회장은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시간과 인연에 최선을 다하자’를 좌우명으로 수행자와 같이 업무에 임하고 있다. 조산사로서 또 불제자로서 산모의 안심(安心)과 태아의 건강한 정신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권하고 있다.

‘관세음보살님! 이 아이를 온전히 주신다면 제가 불법을 정말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태아의 머리가 산도에 끼인 채 오도가도 못하는 채로 30분이 넘어갔다. 흡입기로 아이를 빼려 시도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보호자들에게는 산모만이라도 살리겠다는 응급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분만실 분위기는 초긴장 상태로 흘러갔다.

“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의료기술도 지금처럼 발전된 상황이 아니다 보니 분만 중 안 좋은 결과가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했죠. 이 아이를 꼭 살리고 싶다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천수경’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천수경’을 외웠다. 덕분일까, 나올 것 같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쑥’하고 손 안에 들어왔다. 뒤에 있던 간호사가 “조산사님! 아이가 나왔어요!”라고 소리치기 전까지도 몰랐다.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으니 저도 약속을 지켜야겠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저와 만나는 인연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고 제 자신도 부처님 가르침에 걸맞게 살고자 지금껏 노력하고 있습니다.”

1959년 경상남도 봉화에서 나고 자란 이순옥(64) 대한조산협회장은 불심 깊은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봉화산에 자리한 정토원에 ‘놀러’ 다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시공부를 하고 서거 후 위패가 모셔진 바로 그곳이다.

“심심하면 절에 갔고 스님들도 저희 집에 왔다갔다 하셨어요. 마음 내서 절에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새벽 등굣길이 너무 어두워서 무서운 마음이 일어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관세음보살님을 간절히 불러보라고 권하셨고 저도 따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보호막이 쳐지듯 무서움도 없어지고 편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불심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지는 당시로서 드물게 아들, 딸 할 것 없이 자식에게 늘 공평했다. 불교공부도 깊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도 법문을 해주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께선 사람 몸 받기 어렵고, 사람 몸 받아 부처님 법 만나기는 더 어렵다. 그러니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절대 하지 말라고 늘 가르쳐 주셨어요. 또 여자도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그 말씀이 저에게 삶의 지표가 됐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조산사로 진로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이 회장은 40여년간 1만여명의 아기를 받은 배테랑 조산사다.
이 회장은 40여년간 1만여명의 아기를 받은 배테랑 조산사다.

그는 40년간 1만명이 넘는 신생아를 받은 베테랑 조산사다. 세상에 태어난 한 생명과 처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조산사의 특혜라고 생각하는 그가 아이를 처음 안으면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제가 받은 모든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 있어요.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아이 눈을 바라보며 항상 ‘건강해라. 늘 총명해라. 좋은 인연 만나라’고 말합니다. 그중 ‘인연’이 가장 중요합니다. 좋은 몸, 좋은 머리를 갖고 태어나도 인연을 잘못 맺어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이 말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아기들이 뱃속에서부터 이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기억한다고 믿는다. 세 살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 뱃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척척 답변한다고도 귀띔했다.

“저에게 아이를 낳은 한 산모한테 실제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엄마가 아이한테 ‘너 뱃속에 있을 때 행복했어?’라고 물어보니 ‘행복했어’라고 말했데요. 이어 ‘뱃속에 있을 때 물은 깨끗했어?’라고 물으니 ‘물은 더러웠어’라고 답하더라고요. 엄마가 신기해서 ‘너 또 기억나는 거 있어?’라고 하니 아이가 ‘(조산사) 선생님이 건강하고, 총명하고, 좋은 인연 만나라고 그랬어’라고 또박또박 말하더랍니다. 엄마가 놀라 저에게 확인 전화가 왔었어요. 정말 그런 얘기를 했냐고요. 지금 그 아이는 승마선수로 활약 중입니다.”

산모가 보고 듣는 것이 태아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는 생각에 이 회장은 산모들에게 ‘반야심경’ 사경을 적극 권했다. 기독교인 산모에게는 성경을 필사하라고 일러줬다.

“산전(産前·출산하기 전)교육에 있어서 환경,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안정이 제일 중요해요. 실제로 사경을 꾸준히 한 산모들이 낳은 아이들은 성품이 굉장히 온화해요. 산모도 부처님 가르침에 감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부처님 가르침을 그저 좋은 말씀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보다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선 공부도 물러섬 없어야 했다. 이 원장은 20대부터 화두 수행에 진력해 왔다. 80년대 초반 안동 봉정사 말사 지주암 주지 돈수 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네 부모가 너를 낳기 전 너의 본래면목이 무엇이냐)’ 화두를 받았다. 아이를 받는 조산사에게 너무나 걸맞은 화두였다. 그렇게 20여년 동안 꾸준히 화두를 잡았다.

“2005년이었어요. 그날도 아이를 받던 중이었는데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며 의혹이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일상생활이 편안해지고 생각도 전보다 더 유연해지더라고요. 마침 그해 퇴직하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나게 됐는데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에스와티니(당시 스와질랜드)라는 나라에 가게 됐습니다. 시골 산골짜기에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이 있었는데 보는 순간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에서 6년간 기거하며 출산·교육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에서 6년간 기거하며 출산·교육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에스와티니는 의료 인프라가 열악하고 인구의 4분의 1이 에이즈(AIDS) 감염자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나라였다. 이 회장은 총 6년간 에스와티니 현지에 머물렀다. 조산사의 경험을 살려 산모를 도왔고 현지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등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영어와 한국어로 아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과 명상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에스와티니 사람들의 삶이 그에게 큰 감화로 다가왔다.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다보니 오히려 에스와티니 사람들은 현실에 충실했어요. 늘 웃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곧장 실행하고, 정말 최선을 다해 지금을 즐겁게 살더라고요. 삶을 가뿐하고 단출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제가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6년간 그곳에 머물렀죠(웃음). 지금도 회장 임기가 끝나면 곧장 다시 날아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올해 2월16일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대한조산협회장에 취임했다. ‘의료법 6조’ 개정해 조산사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2월16일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대한조산협회장에 취임했다. ‘의료법 6조’ 개정해 조산사의 역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23년 2월16일 만장일치로 대한조산협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중점사업으로 의료법 6조 세칙 개정에 진력하고 있다. 조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만 교육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교육기관에서도 충분히 조산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원래 조산사는 산모집을 방문해 직접 아이를 받습니다. 일본이나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은 지금도 조산사가 출산을 담당해요. 그런데 1993년 출산이 ‘질병’으로 분류되면서 이제는 산부인과에서만 출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출산은 질병이 아니에요. 연령대별 산전·출산교육이 더욱 세분화돼야 합니다. 산모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조산사의 역할이 반드시 확대돼야 합니다.”

그의 좌우명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주어진 시간과 인연에 최선을 다하자’이다. 어느 순간 불쑥 그의 손을 향해 삶의 첫발을 내디뎠던 40여년 전 그 아기와의 만남처럼 언제 어디서든 다가오는 인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여여해 더 당당해 보인다. 간절했던 그의 기도에 눈 맞춰주었던 관세음보살님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박건태 기자 pureway@beopbo.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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