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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 든 성철 스님 앞에 읊은 게송 “오고 감 없으니 어디서 다리 찾나”

  • 교계
  • 입력 2023.08.31 20:42
  • 수정 2023.09.02 05:24
  • 호수 1695
  • 댓글 2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 의현 스님
계묘년 하안거 해제 법회 법문서
70여년 전 봉암사 오도송 첫 공개
행자 인가한 성철 스님 일화 눈길
“선지식 외호에 진력해야” 당부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잘라 바쳤다. 너는 무엇을 내놓겠느냐.”
“저는 다리를 내놓겠습니다.”

한겨울 아궁이에 지필 장작을 패다 갑자기 불려온 행자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정도 기세에 멈출 성철 스님(1912~1993)도 아니었다. “그럼, 당장 도끼를 가져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순식간에 성철 스님 손에는 팔뚝만 한 도끼가 들렸다. 서슬 퍼런 날 끝에 불꽃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이내 무릎 아래 구들장이 썩은 나무마냥 갈라졌다. 다리는 멀쩡했다. 도리어 도끼날에 날아간 건 행자의 머릿속 망상이었을까. 식음도 잊은 채 그 자리에 틀어앉아 화두를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행자를 찾는다는 향곡 스님(1912~1978) 말씀에 다시 마주한 성철 스님은 이번에도 숨돌릴 틈없이 행자를 몰아쳤다.
“구법을 위해 다리를 내놓겠다고 해서 다리가 날아가 버렸는데 어떻게 걸어왔는가.”
벼락같은 소리를 묵묵히 듣던 행자는 불쑥 한쪽 다리를 들어 보였다. 발을 바꿔 다른 쪽 다리도 마져 보였다. 그 모습에 성철 스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내가 황룡 행자에게 한 방을 맞았네, 맞았어.”
성철 스님의 파안대소 위로 행자의 게송이 울렸다.
“칠식환영유정계, 본래공적무일물, 달마전등법계광, 무래무거역무주(七識幻影 有情界 本來空寂無一物 達磨傳燈法界光 無來無去亦無住)."

그 게송을 들은 성철 스님의 웃음소리는 오랫 동안 이어졌고 그날 이후로 각별히 행자를 아꼈다. 아직 정식으로 수계도 하기 전이었던 그날의 황룡 행자는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으로 법석에 올랐다. 팔공총림 2대 방장 의현 스님은 방장 추대 후 처음으로 설한 법문에서 그날의 일화를 수좌들에게 전했다. 8월30일 하안거 해제일을 맞아 만행을 떠날 수좌들에게 의현 스님은 성철 스님에게 바쳤던 오도송을 들려주었다.

“칠식환영은 유정의 계입니다. 유정계에서 다리가 없으면 올 수 없지만, 본래 공적에서는 아무 물건이 없는데 어디서 다리를 찾겠습니까. 달마대사가 법을 전하는 것은 반야의 광명입니다. 내가 온 일도 없고 간 일도 없으며 주(住)함도 없습니다. 이렇게 바치니 성철 스님께서 나를 아끼셨습니다. 아무쪼록 동화사의 모든 사부대중은 금당선원과 선지식 외호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구순을 넘긴 방장 의현 스님이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70여년 전 오도의 순간을 펼쳐 보이자 통일기원대전에 모인 눈푸른 납자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법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청춘의 행자와 그런 법기를 알아보고 다듬고자 백척간두에 함께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성철 스님의 한량없는 자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음이다.

의현 스님은 “방편이 없는 지혜는 속박이고 방편이 있는 지혜는 구경열반”이라며 “부처님께서도 방편으로 팔만대장경을 설하셨으니 금당선원에서 하안거를 보낸 복덕을 구족하신 선지식들께서는 세상에 두루 회향해주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스님은 이날 법문을 통해 열세 살에 참가한 봉암사 결사를 통해 맺어진 성철 스님과의 인연담을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 장경각을 지켜낸 일화, 동화사 불사의 역사 등을 두루 전하며 후학들의 정진을 당부했다.

동화사 주지 능종 스님은 “방장스님의 고준한 법을 새겨 정진하고 또 정진해 모두 명안종사가 되길 바란다”며 “극달화상께서 동화사를 창건하신 이후 방장스님께서는 1992년 통일약사대불, 통일기원대전을 건립함로써 제2의 창건을 이루셨고 구순의 고령에도 사명대사구국박물관, 수장고 건립, 호국교육관·체험관 조성 등에 진력을 다하고 계시는 만큼 오직 심부름하는 마음으로 방장스님을 모셔 동화사의 사격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법회에는 동화사 주지 능종, 운부암 선원장 불산, 도성암 선원장 덕원 스님을 비롯해 장세철 신도회장 등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대구지사=윤지홍 지사장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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