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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평가절하의 시작인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3.09.05 10:11
  • 호수 1695
  • 댓글 0

항일 부대 가장 통렬한 승리
봉오동 전투 ‘홍범도 지우기’
전향할 ‘조국’ 없었던 장군에
스탈린 공산주의로 덧씌워 매도

항일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봉오동 전투’(1920.6)와 ‘청산리 전투'(1920.10)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가장 통렬한 승리’로 손꼽힌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장군이, 청산리 전투는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는데,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도 제1연대장으로도 활약했다. 두 장군은 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함께 육사의 종합강의동인 충무관 앞에 조성돼 있다. 그러나 두 장군은 올해 안에 헤어져야 한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교내에서 교외로의 이전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교외에 남게 될 세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도 육사 내 어디로 옮겨질지 정해지지 않았다. 

학계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홍범도 장군은 15세 때 평양 감영에서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에 입대했다. 4년간의 군 생활을 마친 후 제지공장의 노동자, 금강산 출가를 통해 조선사회의 부조리와 민족의식을 체득했다. 을사늑약(1905) 후 일제 침략의 자행을 목도한 후 1906년경 포수들로 주축을 이룬 의병대를 조직해 반일투쟁에 나섰다.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무기와 화약 등을 지원받으며 투쟁의 전선을 확대했다. 일제는 총기를 소지한 것 자체만으로 사살할 수 있는 단속법(團束法)으로 맞섰다. 이에 의병대는 고전했다. 경찰과 헌병은 물론 일진회원들로부터도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서 무기는 물론 화약도 제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내에서의 의병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던 이유라고 한다.(1908.10) 

근거지를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한 홍범도 부대는 독립군 양성을 위한 기지 건설에 주력했다. 그 결실이 대한독립군 결성이다.(1919) 홍 장군을 사령관으로 한 대한독립군은 조선 총독부 예하 일본 정규부대를 상대로 혁혁한 승리를 거뒀다. 그중에서도 ‘봉오동 전투’ 승리는 압권이다.

김주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은 논문 ‘홍범도의 항일투쟁과 역사적 의의’를 통해 “홍범도는 군인으로서 지녀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이를 실천한 용장”이라며 “전투의 최종 목표인 ‘적의 섬멸’을 위해 정진하였음을 그의 장기간의 항일투쟁에서 보여준 특징”이라고 했다. 육사 또한 2018년 6월7일 ‘봉오동 전투 전승 98주년 기념 국민대회’에서 “독립전쟁 중 몸소 보여주신 숭고한 애국심과 투철한 군인정신은 위국헌신 군인 본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관생도들에게 참다운 군인의 귀감”이라며 명예졸업증서를 수여했다. 

정부와 여당. 국방부가 문제 삼는 건 ‘소련 공산당 가입’이다. 국방부의 주장은 이렇다.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 공산당의 사주를 받고 불법 남침하여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라는 입장을 견지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홍범도 지우기’가 맞다. 

홍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으면 안 될 만큼 ‘소련 공산당 가입’이 문제가 될까? 아니다. 국방부와 한 총리가 언급한 ‘불법 남침’ ‘6·25전쟁 자행’과 연관된 공산당은 ‘스탈린 공산주의’다. 이건 상식이다. ‘레닌의 공산주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 차이를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 홍 장군은 소련 공산당에 입당(1927)한 후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로 활동했다. 고려인 강제 이주(1937)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정미소 노동자로 살다가 별세했다.(1943) 홍 장군에게는 전향할 ‘조국’조차 없었다. 

일각에서 분석한 것처럼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 사관’에 빠져 있다면 ‘홍범도 흉상 이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독립‧항일 운동을 평가절하하며 친일 세력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윤 정부 내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최근까지 부르짖는 ‘자유’는 항일에 나섰던 그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정부와 국방부는 잊어선 안 된다.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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