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 원공 스님과의 인연 및 선각원 

천축사 무문관에서의 하룻밤

아내와 함께 폐관수행 마친
원공 스님 찾아 인연 맺어
‘충만한 무소유’ 임을 알아채
20여년간 불경 강의도 지속

오래 전 일로 생각된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주말에 무엇을 하냐”고 물어봤다. 왜 그러냐고 반문하자,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 도봉산 천축사에 다녀오자”고 하는 것이다. 6년간 무문관(無門關)에서 폐관수행(閉關修行)하시던 원공 스님께서 6년을 마치고, 얼마 전에 문을 땄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럽시다”고 답했다.

예정했던 대로 일요일 조반을 마치자 바로 도봉산으로 떠났다. 제법 험한 산길을 걸어 12시가 되어서야 천축사에 이르렀고, 법당에 참배한 다음에 곧장 무문관으로 향했다. 우리는 무문관 뒤로 난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공 스님이 초면이었으나,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탓으로 다소 초췌해 보였지만 눈빛은 매우 형형해 보였다. 삼배를 올리려 하자, 한사코 1배로 끝내자고 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공양시간이 됐다. 보살이 마련한 공양꺼리로 간소한 상을 차렸는데, 상 대신에 신문지를 방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 다였다. 스님은 내가 묻기도 전에, 밥상도 짐이 되어 없애버리고 신문지를 밥상 대신 쓰고 있는데, 여간 편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중의 해는 일찍 지기 마련이어서 3시 무렵에 하산하려고 일어나자, 스님께서는 다른 일이 없으면 오는 토요일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하시어,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바로 산을 내려왔다.

약속대로 토요일 퇴근 후에 옷을 갈아입고 도봉산 천축사로 향했다. 해가 거의 다 넘어갈 무렵에야 천축사에 닿은 우리는 법당에 들린 다음, 바로 원공 스님이 계시는 무문관으로 갔다. 원공 스님을 뵙고 바로 삼배를 올리려 하자,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누구로부터도 절을 받지 않으나, 우리 둘이서만 서로 함께 1배씩 하기로 합시다”라고 하셨다. 지금은 그것이 버릇이 됐다. 

저녁공양을 마치자마자 곧 하산하려 하자, 원공 스님은 오늘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자고 가라 권했다. 하는 수 없이 하루 밤을 무문관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니, 나도 무문관 생활을 하루는 해 본 셈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는 수가 있다.

다음날 점심공양까지 마치고 창문을 열자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것인지 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눈길이 걱정되어 서둘러 내려가려 하였더니, 스님께서는 지팡이를 주시면서 눈길에 위험하니 가지고 내려가라는 것이다. 내가 “스님께서 쓰시는 것을 내가 가지고 가면 스님은 눈길에 어떻게 하시려고 그럽니까?”라고 걱정스레 이야기 하자, 스님께서 하시는 말이 “산을 다 내려가면 주차장이 있고 거기에 화장실이 있으니 화장실 뒤에 세워놓고 가십시오”라 하셨다. 내가 “누군가가 들고 가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니, 스님은 무슨 걱정이냐는 듯이 “그 사람도 필요해서 가져가겠지요”라고 마치 남의 말하듯 하셨다. 나는 이것이 그냥 무소유가 아닌 ‘충만한 무소유’ 임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 무소유에 대한 감상이 무뎌지기 전에 수상문(隨想文)을 적어놓으려는 것이다.(‘산다는 것은’에 수록. 법문사)

2000년 이른 봄의 어느 일요일, 그날도 무문관 산행을 하였다. 그런데 스님께서 아랫 동네인 도봉동의 비교적 조용한 곳에 조그마한 토굴을 구하여 내려가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문패삼아 조그마한 액자라도 문밖에 걸고 ‘선각원(禪覺園)’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전했다. 스님은 흔쾌히 승낙하였다. 

이사하신 뒤에 가보니 액자의 ‘선 선(禪)’자가 ‘매미 선(蟬)’자로 바뀌어 있었다. 원공 스님은 “이사하는 날, 유난히도 매미소리가 요란하여 ‘매미 선’자로 바꿨다”고 했다. 생각하니, 그것도 무방하다 싶었다.

그런데 내게는 문제가 생겼다. 원공 스님을 찾아오는 신도들과 스님이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 듯이 나에게 월 1회 정도로 불경에 관한 강의를 해 달라는 것이다. 거절하였으나 결국 월 1회 정해진 날에 약 1시간 30분 정도의 강의를 하기로 했고, 코로나19로 인한 정부규제가 가해지기 직전인 2019년까지 약 20년간 계속했다.

이상규 변호사, 전 고려대 교수

[1700호 / 2023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