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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횡단의 미학2-지배자의 형상과 불보살의 형상 사이 

간다라미술이 불교미술 고향이 될 수 없는 이유

어디에나 잠재하는 기원으로서 모태 아닌 애초 안 어울리는 옷
불교미술은 간다라 양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방식으로 변모
불보살 여성적 형상은 넓게 분산된 지역에서 점점 더 명료해져

간다라지역에서 조성된 미륵보살상(왼쪽)과 일본 고후쿠지의 아수라상(오른쪽).
간다라지역에서 조성된 미륵보살상(왼쪽)과 일본 고후쿠지의 아수라상(오른쪽).

불보살이라는 이상적 인물의 형상이 여성적이라는 점은 다른 종교와 대비되는 불교만이 특이성인 듯하다. 그리스에서는 신의 세계에서조차 최고신은 남성이다. 기독교의 신은 형상을 갖지 않지만 성부(聖父)로서 존재하며, ‘아버지’의 호칭을 가지며 남성으로 그려진다. 콧수염을 달고 칼을 든 이슬람 예언자의 모습 또한 그렇다. 이렇게 신이나 예언자가 남성적 형상을 갖는 것은,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 어울리는 형상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문화와 종교를 관찰했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불보살상의 여성적 형상을 주목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슬픈 열대’). ‘미개’와 ‘야만’이라 간주되어 파괴된 비서구 세계에서 느꼈을 고귀한 슬픔에는, 계몽과 문명화라는 미명하에, 또한 선교라는 목적 아래 이질적인 타자들을 자기 모습대로 동일화하거나 그게 아니면 제거하고야 마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신에 대한 우아한 분노가 배어 있다. 그가 “이슬람의 근방에만 가도 느끼게 되는 불편한 마음”(727)은 바로 거기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좀더 강화된 양상으로 재발견하기 때문이다. 칼을 든 정복자로 표상되는 충동에서, 그에 의해 파괴된 인도의 사원들과 유적들, 그리고 학살된 승려들에게서 그는 ‘슬픈 열대’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제3의 성을 형성한다”고 보이는 불보살의, “성의 대립을 초월한 것 같이 보이는 그 평온한 여성스러움”(731)이 그에게는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서든 대면해야 했던 정복과 파괴의 식민주의로부터 벗어날 출구로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서양과 동양의 중간에서 일어난, 자신의 고향보다 더욱 남성적인 이슬람으로 인해 서양이 불교와 만나며 변형될 가능성이 차단되었다며 안타까워한다. “서양이 여성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755) 레비스트로스가 이런 생각을 절감한 것은 탁실라에서였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스키타이의 쿠샨, 그리고 인도의 상이한 문화가 공존하고 섞이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던 곳이다. 그 공존과 혼합의 산물이 간다라 문명이다. 그리고 이는 마투라와 더불어 초기 불교문화를 형성한 두 개의 거점 중 하나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간다라만으로 레비스트로스의 바람을 낙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알다시피 간다라의 불보살상은 전형적일 만큼 남성적인 형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된 미륵보살상은 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 몸의 윤곽은 옷에 많이 가려졌지만, 그래도 드러나는 가슴과 배는 든든하고 넓어 남성적 색채가 완연하고, 허리와 골반, 다리로 이어지는 선 또한 직선적이다. 옷 주름 속의 다리도 직선적으로 힘차고 단단해보인다. 얼굴은 세로방향의 길이로 인해 안정적이고 입은 꽉 다물어 단호하다. 옷의 주름은 간다라 조각이 흔히 그러하듯 보살보다 앞에 나서려는 듯 역동적이고 화려하다. 입체적으로 부각된 콧수염은 그렇지 않아도 남성적인 신체와 얼굴에 다시 한번 남성이라는 결정적 표시를 남긴다. 다른 대부분의 간다라 불보살상도 이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불보살상이 반드시 여성적 신체나 얼굴을 가질 이유가 있는 건 아님을 보여준다. 간다라 불보살상이 남성적인 것은 필경 조각의 형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그리스 문화에 기인하는 것일 게다. 거기서 불보살의 형상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반면 간다라 이외의 지역에서 널리 발견되는 불보살상은 여성적 형상이 주도적이다. 여성적이라고 하기 힘든 상들도 있지만, 사천왕이나 명왕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남성적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 특별한 인물들도 험한 표정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남성성은 차라리 익살스러워서 정복자와 지배자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나라(奈良)의 코후쿠지(興福寺)의 유명한 아수라상은 투쟁과 혼란을 상징하는 아수라마저 여성적 형상으로 조성했다. 이는 확실히 열반과 자비 등의 교리와 불보살의 여성성 간에 우연이라 할 수만은 없는 강한 친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이유에서 간다라 미술은 불교 미술의 초기 양식이지만, 불교미술의 ‘고향’이라기보다는 ‘타향’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에나 잠재하는 ‘기원’으로서의 모태가 아니라, 어울리지 않는 남의 옷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미술은 간다라 양식으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으로 변모해간다. 여성화된 형상을 향해 간다. 불보살상의 여성적 형상은 넓게 분산된 지역에서 각이한 경로를 밟은 불교미술을 하나로 묶어주는 어떤 수렴의 양상을 보여준다. 단일한 기원도 목적도 갖지 않으며, 확실한 모델이 없음에도,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를 포괄하는 아시아의 드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이 일관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명료해진 불보살의 이상적 형상이 여성적이었음을 소급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물론 이런 과정을 두고 마투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옷의 주름이나 신체의 입체감을 ‘평면화’시킨 불상의 양식, 굽타 시대 창안된 반개한 불두의 형상 등이 확산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특히 북방으로 전파된 불교의 경로에서 간다라의 지역적 중요성을 안다면, 이렇게 볼 때조차 ‘확산’은 사실상 간다라의 남성적 형상과 마투라의 여성적 형상이 경쟁하며 시대와 지역의 조건에 따라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이었다고 해야 한다. ‘지지’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되는 두 극 사이에서 각자의 조건에 연하는 감각이나 취향이 스며들며 이루어진 나름의 종합이 수렴되며 서서히 모여든 방향을 뜻한다 하겠다.

그래서 가령 둔황의 불상은 간다라 스타일에 속하는 것부터 중국적 색채가 강한 것까지 다양한 양상을 취하고 있다. 운강석굴 불상들의 특이성은, 북위를 건설한 유목민의 남성적 취향에 연하는 수평성이 큰 직선적인 선들과 넓은 어깨의 호방한 신체와, 중국적인 감각에서 연유하는 평면화되고 부드러운 면들의 멋진 종합이다. 다른 한편 왕권이 연관되면 불보살상의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라 남성적 색채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크기에 의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국가권력의 욕망과 감각에 연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종합이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경주 불국사의 불상이나 부석사의 불상, 특히 상원사의 문수동자상 등 한국의 많은 불보살상 얼굴에 그려진 작은 콧수염은, 여성적 신체를 만들면서도 이분이 남성임을 잊지 말라고 억지로 덧붙여놓은 사족 같다. 애초에 불상을 만든 분들의 미감이 그리 한 것인지, 나중에 개금불사를 주도한 분들의 미감이 그리 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701호 / 2023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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