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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김기택의 걸레질하는 여자

기자명 동명 스님

마음 방도 걸레질이 필요하다

걸레질은 매우 아름다운 행위
큰절처럼 겸손이 걸레질 기본
걸레질과 수행의 마음은 동일
하심할 때 마음 때도 벗거져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어디든 떠돌아다니고 기웃거리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눌러앉는 먼지들:
오라는 곳 없어도 밤낮없이 찾아오고
누구와도 섞여 한 몸이 되는 먼지들:
하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먼지들도 그만 승복하고
고분고분 걸레에 달라붙는다.
걸레 빤 물에 섞여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오체투지하듯 걸레질을 한다.
(김기택 시집, ‘사무원’, 창비, 1999)

언젠가 나는 “인간의 여러 행위 중에서 큰절만큼 겸양과 존경의 의미를 함께 담은 고귀한 행위는 없을 것 같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렇게 쓰고 나서 인간의 행위 중에 아름다운 행위가 얼마나 많은데, 너무 쉽게 말했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참으로 놀랍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이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스포츠에도 아름다움을 겨루는 경기가 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아름답게 물속에 뛰어들기, 공중에서 회전하다가 아름답게 착지하기,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 타고 우아하게 춤추기, 물속에서 코 막고 무용하기 등은 아름다움을 겨루는 스포츠이다.

그러나 우리는 걸레질하는 인간의 행위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걸레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계급사회에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치부되었기 때문일까? 이 시를 통해 걸레질하는 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으니, 시를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참 고맙다.

걸레질의 시작은 큰절과 비슷하다. 큰절처럼 합장하지 않은 대신에, 두 손이 걸레와 하나가 된다. 큰절처럼 무릎을 꿇고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인 겸손한 자세가 걸레질의 기본이다. 엉덩이는 들어야 한다. 엉덩이를 드는 이유는 걸레질은 이동하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방향을 전환하기도 하는데, 그때 엉덩이는 균형을 잡아주면서 무릎과 함께 이동할 힘을 제공하는 일종의 자동차의 뒷바퀴 역할을 해준다.

이동하는 과정도 지극히 겸손하다. 시인은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걸레질하지 않으면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걸레질하는 마음은 수행하는 마음과 같아야 했던 것이다. 

나는 수행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심(下心)이라고 생각한다. 하심은 자기를 내려놓는 마음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수행의 기본이다. 봉암사 태고선원 서당(西堂) 입구에는 “이 문에 들어서는 순간 알음알이는 버려라(入此門內 莫存知解)”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알음알이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참선수행을 하다 보면 느낀다. 마음 방도 걸레질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 방을 걸레질할 때의 태도가 딱 이 속에 제시되어 있으니, 바로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겸손해야 하며,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세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방 안의 먼지들이 구석으로 숨는 버릇이 있듯이, 마음의 먼지도 구석으로 숨는 버릇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단단하게 달라붙는 접착력이 있어서, 큰절 올리는 마음이 아니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이 아니면 잘 닦이지 않기 때문이다.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원인은 청정하지 않은 데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어서 주위 환경이 깨끗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병이 생기기 쉽다. 오체투지하듯 정성스럽게 방을 걸레질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위한 수행에 다름 아니며, 몸과 마음과 환경이 청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불국토(佛國土)이자 유토피아이자 하늘나라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702호 / 2023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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