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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이론에 의탁한 수행(1) - 물들지 않는 세상살이; 총론 ①

전통 경학 따라 ‘이세간품 38’ 분석

‘이론에 의탁한 수행’ 제목은
화엄 경학 ‘4분설’ 유래 삼아
이론 설명은 항포 기법 활용
실천 논할 땐 원융 기법으로

이래저래 다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아 보게 된다. 금년도 이제 마지막 달력을 남겨 두니 그렇고, 또 본 연재도 ‘한 둘레’가 끝나고 새로 또 ‘한 둘레’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제1회부터 제9회까지의 연재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세계’라는 큰 주제로, ‘화엄경’ 설법에 등장하는 인물과 넓은 세계를 소개했다. 비유하자면 마당도 마련되었고 그 마당에서 뛰어놀 광대들도 모여들었다. 이제 ‘한 판’ 놀아보는 일만 남았다. 그 첫 번째 판의 주제는 ‘수행이론의 총망라’로, 본 연재의 제10회부터 제88회에 걸쳐 ‘화엄경’에 등장하는 각종 수행이론을 소개했다. 이번의 제89회부터는 ‘이론에 의탁한 수행’이라는 큰 주제를 걸고 ‘화엄경’ 구성작가가 펼친 또 ‘한 둘레’의 놀이판을 소개하려고 한다.

위에서 필자는 ‘한 둘레’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전통 화엄 경학에서는 ‘편(徧)’이라는 글자로 그 뜻을 표현했다. ‘일련의 코스를 거치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일련의 코스란 ‘⑴믿음-⑵이론-⑶실천-⑷발원-⑸체험-⑹성불’의 코스를 말한다. 이런 일련의 코스가 제2회의 보광명전에서 시작하여, 제3회 도리천궁, 제4회 야마천궁, 제5회 도솔천궁, 제6회 타화자재천궁을 거쳐, 다시 제7회의 보광명전에서 마치게 된다. 

이런 ‘첫째 둘레’를 경학의 훈고 용어로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이라 한다. ‘인지(因地)’와 ‘과각(果覺)’ 즉, 수행이라는 땅[地]에서 깨침이라는 열매[果]가 인과가 상응하여 영글듯,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이치를 알게[生解] 하는 부분이 제2회에서 제7회까지 둘린 ‘첫째 둘레’였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첫째 둘레’를 ‘여래명호품 제7’에서 ‘여래출현품 제37’에 걸친 총 31품에 할당했다. ‘둘째 둘레’는 ‘이세간품 제38’에서 펼쳐지고 ‘셋째 둘레’는 ‘입법계품 제39’에서 펼쳐지는데, 이 둘 모두 ‘⑴믿음-⑵이론-⑶실천-⑷발원-⑸체험-⑹성불’로 둘린다.

이번 호 연재부터 필자는 ‘이론에 의탁한 수행’이라는 큰 제목을 붙여 ‘둘째 둘레’를 소개하려고 한다. 제목을 이렇게 붙인 근거는 ‘탁법진수성행분(托法進修成行分)’이라는 화엄 경학의 ‘4분(分)설’로 유래를 삼았다. ‘화엄경’ 구성작가는 ‘첫째 둘레’의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에서는 ‘순서로’ 이야기를 배치했지만, ‘둘째 둘레’에서는 ‘모아서’ 이야기를 배치하는 작가의 솜씨를 발휘했다. 이론을 설명할 때는 분석하여 나열하는 항포(行布)의 기법을 활용했고, 실천을 논할 때는 종합하여 녹여내는 원융(圓融)의 기법을 활용했다.

‘화엄경’ 제10품에서 제32품까지의 품별 배치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전통의 화엄 경학에서는 수행자가 거쳐야 할 일련의 과정을 ‘⑴믿음-⑵이론-⑶실천-⑷발원-⑸체험-⑹성불’의 단계로 설정한다. 분명, ‘첫째 둘레’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둘째 둘레’도 그런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게 보면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그렇기는 ‘셋째 둘레’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더라도 본 연재에서 필자는 전통의 경학에 따라, ⑴~⑹의 단계로 ‘이세간품 제38’을 분석해 가기로 한다. 

먼저 서지학적 문제를 설명해두기로 한다. ‘화엄경’의 한 품으로 ‘이세간품’이 한문으로 번역 소개되기 이전부터 이미 서진시대 월지국에서 도래한 역경사 축법호 스님이 여섯 권으로 된 ‘도세품경’이란 이름으로 단행본을 번역해내었다. ‘돈황’ 지역에서 살았던 축법호 스님은 진(晉)나라 무제 시절(265~290년), 서역으로 들어가 많은 경전을 가져와 한문으로 번역한다. 경의 이름에 들어있는 ‘도(度)’ 자는 ‘이(離)’ 자와 의미가 서로 통한다. 

한편, 축법호 스님 이전에도 번역본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런 정황을 ‘출삼장기집’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경전 목록집인 그 책에 따르면 ‘보현보살답난이천경(普賢菩薩答難二千經)’이란 이름을 소개하면서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고 메모를 붙였다. 경전의 이름에 들어 있는 “이천”이란 ‘화엄경’의 ‘이세간품’에서 보혜보살이 던진 200가지 질문에 각각에 대해 보현보살이 10가지씩 대답한 총 2000가지 대답을 의미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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