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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을 향한 공명점과 범패의 현실성-끝

기자명 윤소희

공명점, 우주와의 소통 열망이 만든 불가사의

확성기 없던 시절 공명점 만들어지는 형태로 제단 쌓아
21세기에도 소리확산 음향공법 원리 밝히지 못하고 있어
한국불교의식의 수륙재 오로단이 우주와 소통하는 매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2년 삼화사 국행수륙재 오로단’ ‘멕시코 치첸이사 제단’ ‘인도 아잔타 제26석굴 예배실’ ‘중국 자금성 천단’.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2012년 삼화사 국행수륙재 오로단’ ‘멕시코 치첸이사 제단’ ‘인도 아잔타 제26석굴 예배실’ ‘중국 자금성 천단’.

확성기가 없던 시절, 성악가의 능력 중 첫 번째는 ‘음량이 얼마나 크냐’였다. 때문에 클래식 성악가들은 마이크 없이 넓은 공간을 울리는 발성을 연마하였다. 서울에서 하는 재의식에는 스님 한 명이 독창으로 하는 범패가 많다. 여기에는 국가나 왕실이 재주가 되는 대형의식이 사라지고 일가(一家)의 요청으로 행해 온 배경이 있다. 확성기가 없던 시절 큰 도량에서 범패를 하는데 한 사람이 노래한다는 것은 음량적 측면에서 불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억불의 도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영남지역은 지금도 대부분의 범패를 울력소리(합송)로 하고, 중국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전쟁터에서는 어땠을까? “진군(進軍)~~~” 하는데 목소리가 모기만 하다면 병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 나갈 수 없다. 말발굽 소리와 갑옷이 철컥거리는 산과 들에서는 장군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신호를 보내는 깃발이 있고, 깃발이 안 보이는 병사들을 위해서 북을 치면 진격하고, 징을 치면 퇴진하였다. 범패할 때 타주하는 징을 “태징한다”는 것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확성기가 없던 시절에는 제단을 쌓을 때 음향공법을 썼다. 그래서 자금성의 천단, 인도 아잔타 석굴, 멕시코의 치첸이사와 같은 곳에 가면 특정 지점에서 소리를 내어보는 관광객들을 목격할 수 있다. 치첸이사의 마야인들은 피라미드 정상에서 희생제물을 바쳤다.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제단에서 의식을 행할 때 마당에 도열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공명점이 있다기에 그곳에서 손뼉을 쳐 보니 메아리가 울렸다. 그 공명 지점이 얼마나 되는지 걸음을 옮겨가며 손뼉을 쳐보니 몇 발짝 못가 그 울림이 사라졌다. 당시 마야인들의 제사에는 합창대도 있었는데, 공명지점에서 노래하지 않았을까.

아잔타 동굴에도 제사 지내는 곳 주변에 공명점이 있었다. 현지 안내인이 여기서 소리를 내어보라고 해서 “아! 아! 아!” 해보니 소리 울림이 있었다. 동굴이라서 그런 것일까 해서 다른 지점에서 소리를 내어보니 그런 울림이 없었다. 자금성의 천단은 원형 건물에 사방이 트여있는데도 특정 지점에서 울리는 공명점이 있었다. 가이드들이 여기서 손뼉을 쳐 보라고 하자 다들 손뼉 치느라 일시에 “뚜닥 뚜닥”하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첨단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지구촌 각지에 있는 이러한 음향공법의 원리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치첸이사에는 청년들의 농구 경기장에도 공명지점이 있었다. 말하자면 마야인들의 화랑이라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곳인데, 이를 지휘하고 심판하는 망대가 있고 그 지점에서 신호를 보내면 소리가 크게 울렸다. 승패가 가려지면 ‘이긴 팀’ 수장의 목을 쳤다. 피 끓는 젊은이라 분수처럼 피가 치솟는 모습을 새겨놓은 조각도 있었다. 자기 목을 바치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승리를 쟁취하고 그 값으로 목을 내어놓다니…. 신과 명예에 목숨을 바치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목에서 피가 치솟는 모습을 새겨놓은 그 돌조각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고대인들이 목숨을 바쳐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이 생각한 우주의 궁극, 즉 신께 다다르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소통의 매개가 음향이었다. 하늘 혹은 우주와 소통하고자한 인간의 열망이 얼마나 지극하였으면 그런 공명점을 만들어냈을까? 이러한 행위가 우리네 불교의식에도 있으니 수륙재의 오로단이다. 동서남북간방천지 시방(十方)으로 사신을 보내기 위해 노래를 하는데, 그것이 범패이다. 지금껏 여러 사찰의 수륙재를 다니면서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오로단 절차를 마치면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과 번이 휘날리는지라 기적인가 우연인가 하였다. 아무튼 피를 철철 흘리며 제사를 지내던 마야족이나 고대 인도의 제사에 비하면 얼마나 온유한 방식인가! 

불교의식이 이렇듯 온유한 데에는 카스트와 무관한 ‘무차법회’에다 희생제의와 반대였던 ‘포살(uposatha)’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국행으로 수륙재가 행해질 때 확성기가 없던 재장에 수많은 승려들이 울려내는 합송 범패가 장관이었다. 그러나 중기 이후 도성 안의 사찰이 폐사되고, 의례는 민간 주도로 행해져 오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무격승니(巫覡僧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불교의식과 무속이 얽혀들었다. 굿판에서 오방신장과 함께 부처와 보살을 청하고, 불교의 도량게로 굿의 터 닦음을 하는가 하면, 축귀경(逐鬼經)과 함께 ‘천수경’, 회심곡을 염불무가(念佛巫歌)로 노래하다가 마침내 세존굿, 제석굿이 생겨났고, 재장의 회심곡은 무가의 청배장단으로 노래하게 되었다. 

필자가 불교의식과 범패를 처음 접했을 때, 그간에 겪어온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붓다의 범음성과 오늘날 범패를 바로 연결하여 설명하는 자료만 있었으므로 현실적 느낌이 다르다는 의문이 밀려왔다. 그리하여 20여년을 인도에서부터 우리네 현실까지 탐색해 보니, 천대받고 무시 받으면서도 이만큼 살아남은 것이 신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간 불교의례의 올바른 설행을 위해 부단히 애써 온 스님과 학자들의 노력으로 의례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억불을 지나며 망가지고 흐트러진 잔재들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불교의 정체성과 여법성에 못 미치는 설행관습부터 사소하게는 징 타주를 태징이라 하거나, 한자 가사를 노래하는 짓소리를 범음이라고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붓다의 범음성에 대한 존숭의 마음을 장엄한 짓소리에다 붙인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범음’이라는 언어 본래의 뜻과 현상이 부합하지 않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리하여 내년에는 붓다의 범음성부터 오늘날 한국의 어장스님들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인물 탐구의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709호 / 2023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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