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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의 이정표

기자명 김예진
  • 청년 칼럼
  • 입력 2024.01.23 15:20
  • 수정 2024.02.13 12:12
  • 호수 1713
  • 댓글 0

한창 자비 없이 연달아 늘어선 시험 사이에 끼어 있던 기말고사의 어느 날, 글을 쓰려 책상에 앉으니 뒤늦은 걱정이 일었다. 불교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부족한데 어떤 이야기를 써가야 조금이라도 알맹이가 남을지, 나름 오래 고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 괜히 멋들이는 글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나는 20대 방황의 시기가 제법 일찍 찾아온 편이다. 대학엔 입학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했다. 혼자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듯 모든 것이 막막했던 3월, 이끌리듯이 들어간 불교 동아리가 나에게 등불이 되어주었다. 동아리의 첫날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도법사스님은 이해가 쏙쏙 가는 법문을, 동아리 선배들은 친절했으며 맛있는 밥까지 사줬다. 밥 사주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잘 없더랬다. 혼자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서 심란하더라도 동아리에 가면 왠지 마음이 편했다. 그게 좋아서 나가던 게 어느새 1년을 채웠고, 그새 회장이라는 직함까지 달게 되었다. 

그저 고즈넉한 산사라는 이미지로 막연한 호감이 있기만 했던 불교는 내게 깊이 스며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처음엔 사람이 좋아 나간 동아리였지만 학기가 끝날 때 즈음엔 사람 좋은 만큼 불교도 좋아졌다. 

불교가 마음에 스며든 후에야 비로소 부처님 가르침이 새로 보였다. 예전엔 ‘자등명 법등명’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는 말이라던가.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마음에 와닿지는 않고 붕 떠 있는 것 같기만 했던 말들이 하나씩 내 삶의 갈피를 잡아주고 있다. 

여전히 앞날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일들이 참 많다. 그래도 언제나 삶의 방향으로 삼고 의지할 것을 찾아내니 아주 막막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내년부터 내가 회장을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사한 한편으로는 많이 걱정했다. 선배는 “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했지만, 사서 걱정하는 성격 탓에 시작도 전에 생각이 많았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당장 내년부터 잘 이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이어가던 중, 문득 눈에 ‘자등명 법등명’ 구절이 들어왔다. 나를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으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이 선배가 해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과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것을 계기로 어떻게 잘할지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막막하기만 했던 앞날이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었다. 부처님 가르침이 어느새 삶의 이정표가 된 것이다. 밖에서 의지할 것을 찾기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래도 동아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잡아놓아야지 싶어, 나름 나만의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내가 부처님 가르침을 이정표로 삼았듯, 법우들 역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아가길 바란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좀 더 소박하다. 법우들에게 고민을 잠깐 내려놓고 즐기고 가는 청년 모임으로 다가설 계획이다. 언젠가 절에 갔을 때, ‘무언가 얻으려 하기보다 마음에 든 것을 비우고 가라’는 조언을 얼핏 들었다. 우리 동아리도 절처럼 느껴지는 곳이었으면 한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부처님 가르침이 다가갈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앞으로 경북대 불교동아리의 좌충우돌 활동기를 소개해보려 한다. 나도 법우들도, 짧지 않은 방황 속에서 함께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김예진 경북대 불교동아리 회장 yyy7195@naver.com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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