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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단 하루라도-송기원

기자명 동명 스님

단 하루라도 누가 되지 않는 삶

시인은 소설가이자 수행자
수행자답게 단 하루더라도
정진하겠다는 마음 가지면
그가 있는 곳은 이미 피안

나도 한때는
어머니의 자랑스런 자식이고자 했네.
그렇게 세상에 도움도 주리라 믿었네.

평생의 끄트머리에 이른
내 마지막 바람은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 것.

나를 무는 모기며 쇠파리
한 마리에도
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네.
(송기원 시선집, ‘그대는 언제나 밖에’, 살림, 2023)

 

송기원 시인은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수행자로 다가온다. 그는 인도에서 여러 해 수행했고, 국내에서도 2년 이상 탁발하면서 수행했다. 그가 쓴 ‘숨’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따르면, 미얀마 파욱 수행센터에서 몇 년 동안 수행하면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평택의 한 사찰에서 삭발도 했지만, 스스로 출가자라 말하지 않는다.

송기원이 젊은 시절에 쓴 자전소설 ‘아름다운 얼굴’은 자기 옹호나 자기 연민을 버리고 자기 혐오와 위악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성장기를 아름답게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기 쉬운데, 그는 상처를 이기기 위해 실제 마음과 달리 악해지고 독해졌다.

사실상 그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있는 성품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 민감할 뿐 자신이 준 상처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송기원은 반대로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자신이 준 상처에 민감하다. 사람이란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게 되는데, 젊은 시절의 송기원이 위악이라는 전략을 세웠다면, 수행자로서의 송기원은 ‘솔직함’이라는 전략을 세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모든 생명체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비심 가득한 수행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내 마지막 바람은/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 것”이라니, 나는 ‘단 하루라도’라는 구절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구나! 수행자의 눈으로 보니, 다른 생명체에게 ‘단 하루라도’ 누가 되지 않고 살기는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수행자 송기원의 목표는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되지 않고 사는 것이 되었다. ‘단 하루라도’라는 말 때문에 나는 다음 게송을 떠올린다.

“노력하지 않고 게으름피우며/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라도/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것이 훨씬 낫다.”(‘법구경’ 112송)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단 하루라도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게송의 주인공 삽빠다사는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의 제사장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처님 법문을 듣고 출가했으나 나쁜 생각과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수행에 진전이 없었다. 출가 생활에 회의를 느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다. 삽빠다사는 손재주가 좋아 삭도(削刀)로 스님들의 머리를 삭발해 주곤 했는데, 삭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다 실수로 죽은 것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나무 밑으로 가서 나무에 머리를 기대고 삭도로 목을 그으려 했다. 목을 긋기 전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출가생활을 돌이켜보니 ‘나는 수행해도 크게 성취하지는 못할 거야’ 하는 퇴굴심을 가졌던 것 외에는 항상 청정하게 생활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한 생각만 돌이키면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는 삭도를 든 채로 자신의 몸과 느낌과 마음을 찬찬히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라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깨닫는 순간 삽빠다사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비구들이 이 사실을 부처님께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는 삽빠다사가 삭도로 숨통을 끊고 싶어서 숲속 나무 밑으로 갔다가 숨통을 끊는 대신 지혜의 칼로 번뇌를 끊어버리고 왔다고 말씀하시고 위 게송(‘법구경’ 112송)을 읊으신 것이다.

‘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꿈꾼다는 것은 지나친 겸손으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송기원의 진심이다. 수행자가 단 하루라도 수행자답게 정진하겠다는 마음이면, 그가 있는 곳은 이미 피안(彼岸)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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