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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벽산원각 스님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4.02.21 13:21
  • 수정 2024.02.21 13:22
  • 호수 1718
  • 댓글 0

동쪽 길로 왔는가? 서쪽 길로 왔는가?

결제만 있다면 그것은 결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요, 또 해제만 있다면 그것 역시 해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해제가 있는 결제야말로 제대로 된 결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결제가 있는 해제야말로 해제로써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결제가 있기 때문에 해제가 있는 것인데 해제가 결제와 무관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해제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해제 때도 항상 결제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선인들은 만행을 하면서 선지식을 찾았고 또 문답을 하면서 다녔던 것입니다.

월화(月華)선사가 해제를 맞이하여 찾아 온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대용(大容)지방에서 결제를 마치고 왔습니다.”
“동쪽 길로 왔는가? 서쪽 길로 왔는가?”
“서쪽 길로 왔습니다.”
“서쪽 길로 왔다면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은 만났는가?”
그 말을 듣고 납자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절을 올리니 선사께서 말했습니다.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벽산원각 스님.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벽산원각 스님.

“나에게 절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법담인데 결제를 어디에서 했다는 대답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생활 속의 대화로 격을 낮추어 버렸습니다. 아차! 하고 늦게라도 알아차렸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상여 뒤에 약봉지를 매단 격입니다. 약을 먹어야 할 사람이 상여 속에 있는데 뒤늦게 약봉지를 처방받은 것과 같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서쪽 길로 왔다면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은 만났는가?’라고 했을 때 차라리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화두로 삼으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그러면 절을 올릴 일도 없고 월화선사께 제대로 된 한 마디를 얻어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게 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대로 된 결제공부를 못했으니 제대로 된 해제공부도 못한 것입니다.

해제랍시고 제대로 수행도 하지 않으면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느라고 짚신만 닳게 한다면 그런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염라대왕이 짚신값을 청구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농부는 봄에 한 알의 종자를 심고 가을에는 추수를 합니다. 세상 전체에 노는 땅이 없지만 그런 농부도 굶어 죽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납자들은 심전(心田) 즉, 마음 밭을 농사짓습니다. 심전을 일구고 가꾸는 일에 해제와 결제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해제를 결제처럼 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걸망 속의 발우를 제대로 들고 다닐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륙시중소불첨다(二六時中小不添多)하니.
일일안거시시자자(日日安居時時自恣)로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적어도 더할 수 없고 많아도 뺄 수 없으니.
일 년 삼백육십 날마다 안거하고 수시로 자자를 하도다.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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