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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논문 집필 작업=명상 수행”

기자명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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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학 전공후 불교학에 입문한 계기는?

문학에 있어서 내 최대의 관심사는 심리학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와 세계에 대한 반응, 세계관이었다. 나는 동시에 심리분석학을 공부했었다. 그래서 불교 수행으로 관심을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리고 불교 수행에서 불교 철학으로, 다시 불교 수행을 심리학적 수행으로 보았다. 심리학으로의 이행, 그리고 불교에 대한 관심으로의 귀결은 내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티베트 불교와 인연?

나는 하버드에 입학한지 1년 뒤에 학교를 떠나 버몬트 주에 있는 산에 들어가 시를 쓰거나 경관을 즐기며 3개월을 보냈다. 버몬트 주의 산 속에 있을 때에 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때 나는 그것을 수행법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안 바로는 티베트 불교에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는 수행법이 있었다. (주: 제프리선생님은 전생에 티베트 사원의 학장이었던 것을 기억하신다.) 관상수행이 매우 익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에 쿼벡 지방에서도 같은 명상을 했다. 그 뒤로 뉴욕 캠브리지에 있는 작은 방을 얻어 그 방에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지만 바람은 들어올 수 있게 만들고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명상을 했다. (이 명상법은 깔라차크라딴뜨라의 수행법이었지만 이것은 그가 티베트 불교를 접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내 친구 가운데 한 명이 뉴저지에 있는 티베트 불교사원에 한 스님을 알고 있어서 그의 소개로 1962년도 말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게쉬 왕겔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지금까지 하고 있는 몇 가지 명상법을 가르쳐 주었고, 자비심을 기르는 핵심적 수행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사실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자비 명상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나 티베트 사원의 원장 스님께서 나를 다시 학교로 보내서 학위를 받게 하셨다.

- 30권 이상의 역서와 저작들, 그리고 60편 이상의 논문들을 출판했고, 지금도 10권 이상의 책들이 집필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매일 수행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지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

이러한 책들과 논문들을 내는 작업 자체가 나에게는 명상을 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 작업을 하는 와중에 나는 어떤 버전의 깨달음이 내 마음 속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그들이 불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 기쁘다.

- 번역 작업에 있어 원칙이 있다면?

원칙은 오히려 매우 보수적이다. 나는 티베트어로 된 전문용어를 번역하는데 있어, 그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보다, 티베트 단어 단어를 번역하는데 집중한다. (티베트어로 된 전문용어들은 대부분 두 단어 이상을 축약한 것이다.) 문장의 번역에 있어서도 의미에 따라 자유롭게 번역하는 것을 삼가 한다. 물론 어떠한 용어는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이럴 때는 물론 다른 번역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나는 번역에 있어 티베트 용어에 충실하게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 티베트 문장의 번역에 있어 의미에 따른 관용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특히 티베트어로 된 전문용어를 영어로 번역하는데 있어서는 그 단어의 의미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하며, 이에 대한 티베트 학자들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만일 내가 티베트 학자들을 만날 수 없었다면, 아마 나는 용어 번역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티베트 불교학자들은 현대적인 형식의 불교공부에 있어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나?

티베트 불교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공부하는데 있어 티베트 불교학자들의 견해를 듣지 않고서 티베트 불교학을 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티베트어로 옮겨진 8∼12세기 인도의 저작들은 사실상 티베트 불교학자들도 공부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역시 티베트 불교학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전통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종종 이 전통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며 놀란다. 설사 8∼12세기 인도문헌들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견해는 아직도 티베트 불교 안에 살아있다. 그리고 현대 티베트 불교학자들의 견해가 옳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반드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며, 티베트 불교 전통이 티베트에 남아있는 불교 전통에 대하여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향후 티베트 불교학의 전망과 과제는

티베트와 몽골에는 아직 그 진가가 밝혀지지 않은 엄청난 양의 문헌들이 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에 대한 번역과 이해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헌에 대한 번역과 이해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이러한 문헌들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실재에 대한 투철한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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