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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人이 출현하니 萬物이 우러러 보네

기자명 법보신문

하늘을 근본으로 삼으면 위를 친애하고
땅을 근본으로 삼으면 아래를 친애한다

‘금강경오가해 강의’는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 스님이 지난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불국사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법보신문은 덕민 스님의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시간적-지리적 제약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지면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전달합니다.


⑧ 감포 이견대의 유래 해설
지난 하안거 결제일에 사부대중이 다 모여 법회를 했는데 조실스님의 육성 법문을 들으니 조실스님의 면모와 선사상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조실스님의 옷자락에서 청풍명월이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태어날 때에도 기틀을 온전히 해서 훤하게 나타내고 죽을 때에도 기틀을 온전히 해서 훤하게 나타낸다.

즉, 진리는 생사거래에 관계없이 항상 우리 곁에 충만하다)의 법문이 챙겨지기도 합니다. 조실스님의 영정은 眼掛長空 手握靈劒(눈에는 구만리 장공이 걸려있고, 손에는 신령스런 반야검을 쥐고 있다)의 모습으로 정혜원명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 육성법문을 듣고 법어집을 들추어보니 帝心杜順禪師의 법신송, 懷州牛喫禾 益州馬腹漲 天下覓醫人 灸猪左膊上(회주의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졌으니 천하명의를 찾아 돼지 왼쪽어깨에 뜸을 떠 주어라)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국의 화엄사상은 두순선사에 의해 꽃을 피웠는데, 화엄경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서 ‘어떻게 하면 화엄경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까?’하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 두순선사가 이 게송을 읊어주었습니다. 회주와 익주는 수 천리 떨어져 있지만 깨달음의 세계, 화엄의 세계에서는 진짜와 가짜, 시비선악의 분별이 모두 사라진 ‘한 공간’입니다.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말이 배가 터졌다는 것은, 마치 자녀가 아플 때 어머니도 함께 아픔을 겪듯 생명이 둘로 나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마거사도 중생을 대신해서 앓아누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모습 아닙니까? 여기서 천하의 명의는 곧 화엄법사를 의미합니다. 뜸을 뜬다는 것 역시 화엄사상으로 치유한다는 의미이지요.

또, 주역에 의하면 좌측은 생명의 근원, 고요함, 바탕, 진리 등을 의미하니 좌측어깨란 곧 진리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두순선사의 법신송은, 중생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때에는 화엄법사라는 의사를 만나서 화엄사상이라는 뜸으로 진리의 근원을 되찾으라는 뜻인 것입니다. 조실스님의 육성, 법어 등을 두루 만나고 보니 이런저런 생각 끝에 조실스님께서 평소에 많이 말씀하시던 경허스님의 제2의 오도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 喝水和聲絶 적山幷影非 聲影通身路 金烏徹天飛 (喝! 소리에 물소리조차 끊어지고, '적'! 소리에 산그림자도 아울러 사라졌네. 소리도 모습도 진리의 活路이니, 해가 밤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네)도 다시 새겨졌습니다. ‘喝’은 선사들이 언어도단의 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고정관념이나 분별망상들을 날려버리는 최상승의 소립니다. ‘적’은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모습들도 다 사라지게 하는 소립니다. 喝소리, '적'소리는 생명이 숨쉬는 소리이고 진리의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여서, 모든 업식을 녹이고 깨뜨려 색과 공을 자유로이 넘나들게 합니다. 색과 공이 둘이면서도 동시에 둘이 아닐 때는 비록 한밤중이라도 金烏(해)가 하늘을 나르며 빛을 내뿜는 것입니다. 喝!, '적'!, 하고 방망이 치는 소리에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부정한 것을 다시 부정하여, 이중부정의 대긍정으로 나아가면 그대로 진리의 현현과 마주치고 천년이나 묵은 복숭아씨에서도 푸른 매화가 자라는 이치를 알게되는 것입니다. 취암선사는 새벽 별 보는 것을 계기로 깨달은 부처님의 진리를 因見明星夢便回 千年桃核長靑梅(새벽별 보고 문득 꿈을 깨니, 천년 묵은 복숭아씨가 푸른 매화를 키웠다) 라고 염송했습니다.

저는 오늘의 우리를 새록새록 음미하기 위해 때때로 古人의 발자취를 엿보기 좋은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곤 합니다. 며칠 전에도 감포의 利見臺를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견대가 어떤 곳인지 물었더니 예비군이 보초를 서는 곳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견대의 유래를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利見臺는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보이는 감은사지 앞에 있는 유적지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은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창건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문무왕은 그 당시에는 드물게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어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신문왕은 문무왕의 그 遺詔에 따라 감은사를 완공하면서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의 출입을 위해 금당 뜰 아래 동쪽을 향해 구멍을 뚫었습니다. 신문왕은 이견대에서 용의 출현을 보고, 옥대와 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받았습니다.

『삼국유사』(출처:卷 第二)에 의하면 문무왕은 智義 법사에게 늘 “짐은 죽은 후 큰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를 지키려하오.” 라고 말했고 지의 법사가 “용은 짐승의 응보인데 어찌 용이 되신단 말씀이십니까?” 라고 되물으면 “나는 세간의 영화를 버린 지 오래되오. 추한 응보로 짐승이 된다면 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신문왕이 감은사를 완공한 이듬해에 “동해에 작은 섬 하나가 떠서 물결 따라 감은사를 향해 왔다갔다합니다.” 라는 해관의 보고를 받습니다. 왕이 기이하게 생각하여 일관에게 명하여 점을 치게 하였더니 “대왕의 아버님께서 지금 해룡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김유신공도 삼십삼천의 아들이 되어 인간세계의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의 덕이 합쳐져 보물을 내려 주려 하니 만약 폐하께서 바닷가로 나가시면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답니다. 왕이 기뻐하여 이견대로 가서 그 섬을 바라보고 사자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는데 섬의 모양은 거북의 머리와 같았고 그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합니다. 다음날 오시 대나무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가 몰아치며 7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어두웠습니다. 다시 바람이 자고 파도가 평온해졌을 때, 왕이 섬으로 나아갔더니 용은 검은 옥대를 왕에게 주었습니다. 왕은 “이 섬의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하고 용에게 물었습니다. 용은 “비유하자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는 합쳐져야만 소리가 나는 것이오니, 성왕께서는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좋은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문무왕은 그 대나무를 지니고 바다에서 나왔고 섬과 용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태자가(효소대왕)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하례하고는 “이 옥대의 눈금은 모두가 진짜 용입니다.” 라고 말하며 왼편의 둘째 눈금을 떼어 물에 넣으니 바로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연못은 용연이라 불리웠답니다. 신문왕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서 월성천존고에 간직해 두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지면 날이 개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은 평온했답니다. 그래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나라의 보물로 삼게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전해진 이 설화에서 볼 때 이견대라는 이름은『주역』의 건괘 ‘飛龍在天利見大人’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불교의 화엄경을 ‘龍宮海藏妙萬法’이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인도의 大乘論師 龍樹菩薩이 용궁에 감추어져 있던 경전을 찾아 널리 유포시키고 발전시킨 것이 화엄경이고 화엄사상입니다. 그 용궁이 어쩌면 인도의 ‘나가’족 마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인도말 ‘나가(Naga)’를 우리말로 옮기면 용(龍)이 됩니다. 화엄경을 꽃피우게 한 용수보살의 인도이름 역시 ‘나가르쥬나’로서 용의 상징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용수보살이 꽃피운 화엄학을 신비적 표현으로 ‘용궁해장묘만법’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옥대와 만파식적을 전해준 용은 화엄학을 공부하는 대승보살을 상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파식적 설화 가운데의 ‘소리로서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 또한 중생을 위해 사자후를 설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만가지 파도가 가라앉아야 소리가 나는 만파식적은, 대나무의 빈 공간에서 소리가 나는 진공묘유이니 금강경과도 상통합니다.

利見臺에 서 있을 때 우리는 문무왕도 만나고, 신문왕도 만나고, 대승보살의 상징인 용도 만나고, 孝사상도 만나고, 華嚴論師도 만나고, 周易의 乾卦에서 말하는 龍과 利見大人도 만나고, 대승불교를 꽃피워 불국토를 건설하려했든 신라인의 불교정신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周易의 乾卦에서 말하는 ‘利見’에 대해 살펴봅시다.

三三乾(乾爲天)
양효(陽爻)는 ‘-’ 이라 쓰고 9로 표시하고, 음효(陰爻)는 ‘--’ 이라 쓰고 6으로 표시하는데, 건괘(乾卦)는 양이 6개 있어 하늘을 나르는 여섯 용의 강건함과 생명력이 넘침을 뜻함.
乾卦의 龍은 금강경의 應無所住而生其心으로 바라밀을 실천하는 대승보살을 의미.

乾 元亨利貞
乾은 元코 亨코 利코 貞하다
하늘의 덕은 만물을 시생(始生)하고, 풍성하게 하며, 열매를 맺게하고, 뿌리두게 한다. 元은 사물의 시작(봄) - 亨은 풍요와 성장과 발전(여름) - 利는 묵묵히 거두어 주고 되돌려주는 것(가을) - 貞은 사물의 근간, 본성, 핵심으로서 동요함이 없고 항구의 도를 지키는 것(겨울)을 의미한다. (참고: 乾의 四德은 元亨利貞이며 涅槃四德은 常樂我淨)
君子體仁 足以長人 嘉會 足以合禮 利物 足以和義 貞固 足以幹事 君子行此四者 故曰 乾元亨利貞

군자는 仁을 체달하여 사람들을 장려해 깨닫게 하며, 아름다운 모임에 禮로써 합하게 하며, 중생을 이익에 義로써 화합하게 하며, 정고로써 모든 일의 줄기를 삼으니, 군자는 항상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는 까닭으로, ‘乾은 元코 亨코 利코 貞하다’ 하는 것이다. (참고: 貞固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의 모습으로 내면의 體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

象曰 天行 健 君子以 自疆不息
象이 이르되, ‘하늘의 운행이 건실하여 君子는 그 것을 이유로 하여 잠시도 쉼 없이 열심히 본분을 다한다.’

初九 潛龍 勿用
물에 잠긴 용이니 용의 기상을 쓰지 않는다.
象曰 潛龍勿用 陽在下也
象이 이르되, 잠룡물용이란 양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밑의 양효를 말하는데, 용이 함부로 날뛰거나 능력을 보이지않고 못에서 浩然之氣를기르고 용덕을 지키며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모습을 드러낸 용이 밭에 있으니 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
象曰 見龍在田 德施普也
象이 이르되 현룡재전이란 덕이 널리 베풀어진 것이다.
성현의 덕이 널리 퍼지니 그 영향과 신임을 받기에 적당하다는 의미.

九三 君子終日乾乾 夕惕若여无咎
君子는 終日 乾乾하여 저녁에 삼가고 근면하면 허물이 없다.
열심히 일하고 삼가며 반성하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허물이 없다는 뜻.
象曰 終日乾乾 反復道也
象이 이르되, 종일건건이란 공부를 반복하는 것이다.
보살의 실천과정을 의미함.

九四 或躍在淵 無咎
或 뛰어올랐다가 다시 연못으로 들어가니 허물이 없다.
象曰 或躍在淵 進 无咎也
象이 이르되, 혹약재연은 나아감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시의적절히 물러나 자취를 감추고 하심으로 근신하면서 덕을 기르다가 나갈 때가 되어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는 뜻.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나르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
성현의 덕이 극치에 이르니 훌륭한 인물들이 함께 모인다는 뜻. 九二와 九五는 짝을 이루는데 九二는 신하를 칭하고 九五는 제왕을 칭한다.
象曰 飛龍在天 大人造也
象이 이르되, 비룡재천은 대인이다.

上九 亢龍 有悔
절정에 이른 용이니 뉘우침이 있다.
象曰 亢龍有悔 盈不可久也
象이 이르되, 항룡유회는 가득 찬 것은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일 위의 양효를 말하는데, 잃는 것도 모르고 물러설 줄도 모르고 겸손하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뜻.
用九 見群龍 无首 吉
用九는, 여섯 마리의 용이 구름에 머리를 숨기고 있음을 보니 길하다.
‘用’은 乾卦과 坤卦에만 있다.
象曰 用九 天德 不可爲首也
象이 이르되, 용구는 하늘의 덕이니 머리를 내밀지 않는다.
위대한 덕행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다는 뜻.
九五曰 飛龍在天利見大人 何謂也
子曰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 親上 本乎地者 親下 則各從其類也

九五에서 이르길, ‘나르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함은 어떤 뜻입니까?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성품이 같으면 함께 어울리고 기운이 같으면 서로 모인다. 물은 습기 있는 곳으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곳에서 타오른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聖人이 세상에 출현하면 萬物이 우러러 본다. 하늘을 근본으로 삼으면 위를 친애하고 땅을 근본으로 삼으면 아래를 친애하니 만물은 제각각 같은 부류를 쫓아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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