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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랑하는 이들만이 내뿜는 기운과 평화로움…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04.08.24 11:00
  • 댓글 0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참으로 묘한 분위기 였다

나는 요즘, 내가 정말 미친게 아닌지 걱정된다. 사람들이 자꾸 꽃이나 식물 등속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웃고 있거나 얘기하는 것, 가만히 또는 멍청히 앉아있는 것을 봐도 그저 한송이 꽃, 혹은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로 보인다.

만해축전이 열렸던 백담사 만해마을에서도 그랬다. 만해대상을 받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인학교, 서예대전, 만해백일장, 하다못해 씨름대회(!) 등등이 열리는 행사장을 누비던 모든 이들이 그저 모두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다. 해가 지고 예쁜 별들이 하늘을 몽땅 채울 때까지, 이른 아침 햇살이 용대천의 물안개와 한판 겨루기를 할 때에 난 도량 여기저기를 쑤석거리며 다녔다. 선의 세계를 아는 건축가가 설계한 만해마을은 발걸음을 들여 놓기만 해도 어떤 충만한 기쁨을 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머무름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 되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아름다웠으며 내게 가장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한 것은 만해축전에 참가한 무수 문인들이었다.

만해축전은 올해로 여섯 번째로 치러지는 행사이다. 문학이 중심이 된 축전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규모와 내용을 자랑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5일간 연인원 5천여명 이상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지만 나를 그야말로 감동 먹게 한 것은 그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내뿜는 아름다운 기운과 평화로움이었다. 그것은 정말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기 힘든 참으로 묘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천천히 걷고 소곤소곤 얘기하고 마을 속 벽면의 여기 저기를 가득 메운 싯귀를 문우들과 같이 소리 내어 읽는다.

여우비가 슬쩍 지나가도 비를 피하기 위해 급히 뛰지 않고 오히려 그 비를 즐기는 사람들. 처음 만나는 문우이지만 나이와 지역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과 시인과 책을 권하는 이들. 머리가 이미 반백인 중년의 여인네가 웃음소리 제법 경쾌한 처녀애들이 전하는 세상 이야기를 조용히, 그러나 자못 겸허히 경청하는 그런, 도무지 비현실적인 정경이 도량 여기저기에서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새삼 문학의 힘을, 시를 너무도 사랑하는 몹쓸 병에 걸린 이들의 무구한 행복을 보았다. 올해 만해대상 수상자 가운데 한 사람인 소설가 황석영씨는 해 저 물어가는 강변에서 열린 수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가운데 “(문학적으로) 성향이 다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는 발언을 덧붙였다. 그것은 만해축전이 지니고 있는 탁월한 미덕을 놓치지 않은 멘트였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것은 오직 백담계곡의 청정한 바람뿐이었다. 그 바람과, 맑은 햇살 아래서 무수한 꽃들이 바람결에 살랑 살랑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무지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백담사 회주이자 만해축전의 기획자이며 총연출자인 무산 오현 스님이 어쩌다 자리를 함께 할 때마다 늘 매정하게, 매번, “너는 도대체 왜!”라는 대사로 시작되는 잔소리의 소나기를 퍼부으셔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저리도 예쁜 꽃들의 잔치를 누가 마련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매년 열고 있으며 갈수록 폼 나게 유지하고 보여주시니 말이다.

그것이 오직 무산 스님의 능력과 복인지, 만해 스님의 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산 스님이 지닌 덕화의 크기가 그만큼 크다는 것만큼은 우리 불교계가 확실히 인정하고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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