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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도 집착말고 소박하게 살아라”

기자명 법보신문

태국 아찬 차 스님(하)

현재 태국과 미얀마 불교의 눈에 뛰는 차이점을 보면, 태국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일을 중시하고, 미얀마는 아비담마 교학에 바탕을 둔 지혜 계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행 전통에서 보면 태국불교는 사원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는 승려들의 자연스런 수행 가풍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고, 미얀마는 다양한 방식의 위파사나 수행을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도 수행처에 모여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설명>아찬 차 스님이 수행하던 쿠티(오두막)


아만 버려야 평온 찾아

현대 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 가운데 한분인 아찬 차 스님은 특별한 수행의 기법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반복적이며 정기적인 좌선을 통해서 마음이 고요해 지도록 자신의 호흡(들숨과 날숨)을 관찰한 다음에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수행하라고 지도하신다.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살아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여 모든 것을 놓아버려라. 그러면 지혜와 마음의 평온에 이를 것이다.” 이 말씀이 아찬 차 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아찬 차 스님이 가르치는 수행은 마음의 조화와 집착을 놓아버림, 그리고 아만에서 벗어난 마음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좌선을 통해서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수행을 실천해 나간다. 참을성을 지니고 자신의 마음과 몸을 관찰함을 통해서 지혜와 마음의 평온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낸다. 이것이 아찬 차 스님의 수행법이다.


아찬 차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즘 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수계하고자 이곳(왓 농 빠 뽕)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경전 읽는데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책만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책 읽을 기회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나, 그들 자신의 마음을 읽을 기회는 너무 적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태국 관습에 따라 수계하러 오면 3개월 동안 책이든 지침서든 일체 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결제 기간 동안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참으로,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이 마음은 그 자신의 길들지 못한 습관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흥분해서 마구 쏘다니는데 그것은 마음이 결코 길들여져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을 길들여야 합니다. 불교의 선정은 마음을 대상으로 합니다. 즉 마음 혹은 정신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마음을 길들이는 일은 불교에서 제일 강조하는 요점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오직 그 뿐입니다. 마음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은 곧 불교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아찬 차 스님의 『마음 길들이기』 서울 : 고요한소리)

<사진설명>(우)왓 파나나차 법당에 모셔진 아찬 차 스님의 사진과 주지 스님인 아찬 파산노 / (좌)아찬 차 스님의 유골

정기적 좌선이 최선 강조

이처럼 마음을 길들인다는 가장 간단한 이치를 아찬 차 스님은 강조하고 있으며, 책이나 이론적인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여 자신의 마음을 길들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합리적이며, 이론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단순한 가르침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지도를 보는 일이 아니라 길을 따라 걷는 일이기 때문에 적은 욕심과 깨어있는 마음인 마음챙김(sati, 正念)를 지니고 자신의 마음을 늘 살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찬 차 스님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아만 즉 ‘나’라는 자아의식은 바로 무거운 바위와 같은 짐이라고 하였다. 아만을 버릴 것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우리가 아만을 결국 놓아버릴 수 있다면,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아만심은 쉽게 극복되는 번뇌가 아니지만(실제로 아라한이 되어야 아만심은 완전히 제거된다.) 아만심이라는 짐을 너무 무겁게 가지고 있으면 마음은 편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마음에 무엇이 짐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가운데 아만심은 덜어내야 할 짐 가운데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법을 바로 볼 때만이 거기에 바른 길이, 나타난다. 번뇌는 단지 번뇌일 따름이며 마음은 단지 마음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라. 그대들은 어떤 법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일체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 법이 아닌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사진설명>왓 파나나차에 있는 아찬 차 스님의 제자 아찬 수메도 스님의 글(원 안)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길이다."
"중요한 것은 성자와 같이 완벽한 생각을 하거나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 수행 말라”

사랑과 증오도 법이며, 즐거움과 괴로움도, 좋아함과 싫어함도 법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이 모든 것들은 법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dhamma)을 실천할 때 그래서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잡고 있던 것을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게 된다.

우리 마음 가운데 생겨나는 모든 조건들, 우리 정신의 모든 조건들, 우리 몸의 모든 조건들은 항상 변화하는 상태에 있다. 즉 무상하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할 것이며 더 이상 무엇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가르치셨으며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살핌으로써 수행을 바르게 하라고 하셨다. 법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바로 여기에 있다.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 속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찬 차 스님은 생활 속에서 그리고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법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발견하고 아만심을 비롯한 모든 법을 놓아버리는 수행을 가르치셨다. 아찬 차 스님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우리에게 다시금 회광반조하는 단순한 수행법을 제시해주신 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찬 차 스님의 가르침을 더 읽고 싶은 분들은 『위파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김열권, 김해양 옮김, 2004, 호두마을 선원)을 참고하기 바란다.

김재성 경전연구소장 metta4u@emap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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