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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동헌스님 (1896~1983년)

기자명 법보신문

90평생 운수납자 삶 실천

1983년 9월 10일 입적
69년 대각회 설립

전북 종무원장 역임
교단 안정에 헌신


1969년 9월 11일.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자 대중불교운동을 전개했던 용성 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재단법인 대각회가 종로 봉익동에 문을 열었다. 일제시대 수많은 옥고를 겪으면서도 한국불교의 근대화를 위해 역경 사업 등을 펼치며 중생 교화에 앞장섰던 용성 스님의 뜻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용성 스님 입적 30여년 만의 일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동헌 스님은 비로소 무거운 짊을 덜 수 있었다. 이제야 스승의 유지를 받들고 실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동헌 스님은 용성 스님의 제자로 90 평생을 운수 납자의 삶으로 일관하면서 스승의 유지를 받들며 대각교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189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동헌 스님은 어려서부터 마을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이후 신학문을 가르치던 사립 광동학교를 졸업했지만 스님은 언제나 마음 한 곳에 부족함이 남아있었다. 한학을 통해 유교와 도교사상을 접했고 광동학교 시절 신학문도 접했으나 참 진리의 길, 올바로 사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을 홀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스님은 마침내 지리산 칠불암을 찾아 불가에 귀의할 것을 발원했다. 스님은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추앙 받던 용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동헌 스님은 1926년 합천 해인사에서 금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 했다. 이후 서울 대각사에서 용성 스님으로부터 사미, 사집, 사교, 대교 전 과정을 수학한 스님은 이후 1930년 전남 선암사 칠전 선원에서 수선 안거를 시작으로 화엄사 탑전 선원, 직지사 칠불선원 등을 돌려 25안거를 성만 했다.

이후 55년 울진 문수암 주지에 취임한 이후 전북 은적사, 선운사, 금산사,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스승 용성 스님이 펼쳤던 대중불교사상을 그대로 실천했다. 특히 60년 전북 종무원장에 취임한 동헌 스님은 전남·북 지역의 교단 안정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무소유로 일관하면서 철저하게 운수 납자의 삶을 실천했던 동헌 스님은 69년 재단법인 대각회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스승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특히 스님은 “중노릇 잘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후학들의 질문에 언제나 “부처님 계행을 존중하라”며 “계행대로 하는 것이 중노릇 잘하는 것이니라”고 강조하면서 수행자의 본분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평생을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수행과 포교에 전념했던 동헌 스님은 1983년 9월 10일 화엄사에서세수 88세, 법납 65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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