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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고송당 종협 스님 (1960-2003년)

기자명 법보신문

정도 지킨 선승으로 추앙

2003년 9월 22일 입적

망월사 30년 결사 참여

만공 스님 문하서 수행



고송당(古松堂) 종협(宗協)스님은 봉은사 조실 석주 스님으로부터 “일생동안 선원에만 다니며 선(禪)만 한 조계종 최고의 수행자”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평생을 수행에만 몰두한 ‘선승 중의 선승’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고송 스님은 1906년 10월 10일 경상북도 영천군 신령면 부산동 726번지에서 경주 김씨 김재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김외룡(金外龍)이며 법명은 종협(宗協), 호는 고송(古松)이다. 스님은 15살 되던 해인 1920년 10월 15일 팔공산 파계사에서 상운 스님을 은사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3년 뒤인 1923년 4월 15일에는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25년에는 망월사에서 용성스님이 주도한 30년 결사에 동참하기도 했다. 1930년부터는 금강산 마하연과 유점사, 표훈사, 신계사를 거쳐 묘향산 보현사에서 당대의 유명 선지식들과 수행 정진했으며 덕숭산 정혜사와 금강산 마하연선원에서 만공 스님을 참회스승으로 모시고 정진했다.

스님은 1926년 오대산에 주석하고 있던 한암 스님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11년 뒤 상원사에서 전법게송과 법호를 받았으니 이 때가 1937년 12월 27일이다.

고송 스님이 한암 스님으로부터 받은 전법게송은 ‘침묵으로 묻고 침묵으로 답한 일화’로 유명하다. 어느날 한암 스님은 평소 눈여겨보던 ‘범상치 않은’ 한 납자를 어두운 방으로 불러들였다. 11년전 오대산으로 입산한 후 두문불출하고 수행에만 매진해오던 후학이었다. 부름을 받은 스님은 아무 말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한참 동안 침묵을 고수했고, 한암 스님 또한 팽팽한 침묵으로 맞섰다. 한참이 지나고 나자 한암 스님은 지필묵을 꺼내 전법게송을 써내려갔다.

경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며
말없이 상대하니 이 무슨 종(宗)인고
풍류 아닌 곳에 풍류가 넘치니
푸른 묏부리에 천 년 묵은 노송이 빼어났네

한암 스님은 그 납자가 묵묵하게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한국의 선풍을 지킬 것을 이미 아셨던 것일까. 그에게 오래된 소나무(古松)라는 법호를 내렸다.

고송 스님은 1942년부터 파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종단 정화 당시 경북교구종무원 감찰국장 소임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에만 몰두했다. 스님은 “100년을 사나 1초를 사나 순간순간 깨어있으면 영원불멸하게 사는 것”이라며 후학들에게 “늘 식업양신(息業養神)하라”고 당부해왔으며, 이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1954년부터 파계사 조실을 맡은 스님은 장장 50년이라는 기간동안 선방을 지키다가 2003년 9월 22일 0시 40분에 파계사에서 입적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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