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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중〉

기자명 법보신문

‘겸양의 덕’ 평생 실천한 선지식

<사진설명>고암스님은 평생 겸양을 실천했다. 사진은 설법하는 모습
고암 스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宗正)’의 자리에 무려 세 번이나 추대된 큰 스승이셨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몸을 스스로 낮추시고 누구에게나 겸양의 미덕을 평생토록 실천하신 자비보살이었다.

심지어 종정으로 계실 때에도 고암 스님은 신도들이나 스님들로부터 삼배(三拜)를 받지 않으셨다. 신도회 일을 보는 거사나 보살이 종정 스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올리려고 하면 첫 번째 맞절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절은 한 번만 하면 됐으니 두 번, 세 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 종정 큰스님께서 삼배를 받지 않으시면 그럼 어떤 스님이 삼배를 받으신단 말씀이십니까?”
“아 아니에요. 절은 한번이면 족하지, 나 같은 부족한 중이 무슨 염치로 삼배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절은 한 번만 하도록 하세요.”

고암 스님은 한사코 두 손을 내저으시며 삼배 받기를 사양했다. 젊은 스님들도 종정 큰스님을 찾아뵙고 삼배를 올리다가 첫 번째 절부터 맞절을 하시는 통에 당황하기 일쑤였고, 첫 번째 맞절을 마치자마자 종정 스님께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버리는 바람에 어찌해야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고암 스님의 겸양은 말이나 문자로서의 겸양이나 겸손이 아니라 이미 당신의 평생토록 몸에 베어있는 향기와도 같았다. 그리고 고암 스님은 불문에 들어온 이후 단 한번도 화를 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일이 없었고,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한 일이 없었다.
제자가 크게 잘못을 해서 속이 상했을 적에는 스님께서 그 제자를 혼자 불러들여 차를 끓여 먹인 뒤 나직이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해도 자네가 못하게 말려야 했을 일인데 어찌 자네가 그런 일을 했단 말이신가?”
이렇게 한 말씀 조용히 하시면 그것으로 그만이었고, 두 번 다시 그 일을 거론하시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고암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함부로 말을 놓지 않으셨으니, 상좌건 손상좌건 20살이 되기 전에는 “아무개야”하고 부르시다가 그 사람이 20살을 넘으면 반드시 말을 올려 “아무개 있으면 이리 오게”하셨고, 그 사람 나이가 30을 넘으면 “여보시게, 이 일은 이렇게 하도록 하시게”하고 존댓말을 쓰셨다.

이교도가 놀려도 “감사합니다”

‘겸손’이라던가, ‘겸양지덕’이라는 말은 아마도 고암 스님을 위해 생긴 말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암 스님은 겸손과 겸양지덕 그 자체였다.
스님의 세수 88세 되던 해, 고암 스님께서는 손주 상좌를 데리고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고 계셨다. 세속나이 88세면 평지를 걸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연세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정상을 등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날 스님께서는 승복을 입으시고 등산을 하셨는데 백록담 바로 근처에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때 뒤따라 산길을 올라오던 한 무리의 젊은 이교도(異敎徒)들 가운데서 한 젊은이가 고암 스님께 일부러 말을 걸었다.
“영감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든 여덟이십니다.”
모시고 가던 손상좌가 대신 대답했다. 고암스님도 손상좌도 승복을 입고 있었으니 스님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 이교도 젊은이는 시치미를 떼고 한마디 던지고 가던 길을 가는 것이었다.
“영감님, 하나님 은덕으로 오래오래 사세요. 할렐루야!”
그 젊은이가 그렇게 놀리듯 한마디 하고 지나가는데, 고암 스님께서는 그 젊은이의 등을 향해 합장하며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올렸다.
“아니 스님, 저런 괘씸한 녀석에게 무엇이 감사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손상좌가 분함을 못 이겨 씩씩거리자 고암 스님께서는 한 말씀 하셨다.
“뭘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생각하시는가? 하나님을 부처님으로만 바꿔들으면 되지 않은가?”

노보살 정성은 마음으로 공양

고암 스님께서 부산의 어느 암자에 잠시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큰스님이 어디 와 계신다고 하면 신심 지극한 노보살님들이 큰스님 건강을 걱정하고 염려한 나머지 큰스님 잡수시라고 이런 저런 음식을 해오는 일이 있었다. 그날도 고암 큰스님이 와 계신다는 말을 듣고 한 노보살님이 지극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그것이 그만 전복죽이었다. 귀하고, 비싸고, 몸에 좋다는 것만을 생각했지 스님께서는 육식이나 해물이나 똑같이 드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오직 큰스님을 위한다는 지극정성 일념으로 전복죽을 끓여온 것이었다.
“큰스님요, 귀한 것이라 큰스님 드시라고 전복죽을 쑤어 왔심더. 자셔보이소.”
큰스님 뒤에 앉아있던 제자도, 그 방에 앉아있던 다른 보살들도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큰스님께서 문제의 저 전복죽을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고암 스님께서는 천진스럽게 웃으시며 그 노보살이 내미는 전복죽을 반갑게 두 손으로 받으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귀한 전복죽을 쑤어 오셨으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죽 그릇을 조심스럽게 스님 곁에 놓으셨다. 전복죽을 쑤어온 그 노보살은 스님의 법담을 들은 뒤 흡족한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전복죽을 쑤어온 그 노보살이 흐뭇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 뒤, 고암 스님은 그제서야 그 전복죽 그릇을 공양간으로 내보냈다. 공양간에서 고생하시는 보살님들 나누어 드시라는 말씀과 함께.
윤청광〈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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