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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에 드리는 불공

기자명 법보신문
신 규 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해마다 절에서는 정월 신중 불공을 드린다. 신도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한 해 무사히 지내기를 기도한다. 발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무병장수, 학업성취, 대학합격, 교통안전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기도들이다. 옛날 할머니 적에는 머리에 공양미를 잔뜩 이고 양초를 들고 그렇게 절을 찾았고, 최근에는 공양미 대신 현금을 봉투에 담아서 불전에 올린다. 겉모습은 달라졌어도 그 정신과 정성에는 변함이 없다.

변하는 세월 속에서 절마다 법회를 열어 불교 교리 강좌를 하게 되었다. 기초 교리도 강의하고 경전도 강독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선어록 등도 강의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사교입선이라 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참선 수행을 지도하는 사찰도 제법 생기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기존의 구식 신도들과 신식 신도들이 갈라지게 되었다.

세칭 신식신도들은 일요일에 모여서 법회도 하고 수행도 하고 한다. 반면에 전통적으로 절에 다니던 신도들은 음력으로 지장재일이나 초하루 보름 법회 관음재일 인등기도 방생기도 등을 한다. 대개는 교육수준이 높고 젊은이들은 참선이나 교리 공부하고, 노인들과 여자들은 전통적인 기도를 한다.

이런 변화 과정 속에서 참선하고 경전 공부 하는 것만이 참된 불교신앙인양 오도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재래식의 불교 신앙을 폄하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불교는 뭐니 뭐니 해도 종교이다. 신앙의 체계이다. 대승경전 어느 것을 보더라도 부처님의 가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게 없다. 특히 화엄경이나 법화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최근 1960년대에 조계종에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표방하면서 공 사상이 잘못 퍼져 마음자리 한번 깨치면 단박부처가 된다고 신도들을 교육했던 것이다. 말은 맞다. 그러나 그럴만한 근거는 참으로 드물다. 중생이 깨치는 것은 다생겁래의 수행과 참회의 결과이다.

화엄경 각 품 어디를 보더라도 설법의 주인이 되시는 각각의 보살님들은 모두 그리고 항상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어서 그 힘으로 설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엄경을 강의하고 법회를 하면서도, 화엄법계가 어떠니 육상원융이 어떠니 하면서도 정작 이 심오한 사상이 부처님의 가피력에 힘입어 나온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가피력에 대해 믿음이 없다면 그는 불자가 아니다. 이런 부처님의 가피를 받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덕을 찬송하고, 공양하고, 법을 청하고, 실천하고 하는 이른바 보현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 으뜸임은 두 말할 것이 없다.

불공의식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기초교리는 물론 심오한 불교 사상, 나아가서는 참회 정근 등이 종합적으로 모두 들어있다. 종교 음악적으로 보아도 훌륭하고 하나의 오케스트라이다. 공경하는 마음에서 존경하는 마음과 하심 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한국불교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정월 신중기도가 있다. 이런 전통을 잘 계발하고 살려서 정월만이 아닌, 일 년 열두 달 내내 불공을 드릴 수 있는 계기를 신도들에게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독 불공을 드리게 하여 신도 각 가정의 어려움을 불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성직자가 해야 할 소임의 하나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스님들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으로 인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가피가 없이는 이법계도 사법계도 운행되지 않는다! hanjungil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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