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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수행 정홍선 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화재로 아버지 잃고 생사의 갈등
사불 전시회 통해 가족들과 융화


사불수행은 서예를 즐겨 하시던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나는 그림 그리는 데는 어느 정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 있는 그림을 따라서 그리는 것쯤이야 하는 생각에 처음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을 느꼈고 여느 미술 못지않게 정성과 창의력을 깃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사불을 더욱 극진한 마음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95년 11월 어느 날 새벽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숨을 쉴 수조차 없이 독한 연기가 방 안 가득 들어찼다.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였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 때 나의 어머니가 크게 다치셨고 아버지는 불길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낀 불의 공포였고 죽음의 공포였다. 생멸의 갈등을 그토록 절실히 겪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나로서는 기도하고 절하는 것보다 더 나은 위로가 없었다.

그 날 화재로 어머니가 크게 다치셔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했다. 시간이나 장소가 부족한 관계로 사불은 할 수 없고 날마다 어머니 병상에서 천수경을 외면서 어머니와 나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길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쾌차 하실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현몽을 꾸었다. 관세음보살님이 내게 다가오시더니 천천히 감로수병을 건네셨다. 감로수병을 받아든 나는 어머니의 입을 벌려 천천히 입 속으로 넣어 드렸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어머니의 병세가 차츰 호전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게 모두 부처님의 자비라 생각하니 수행에 더욱 진력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회복기에 들었지만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난 직후인지라 태어나고 죽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갈등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다음 해 백중날이 됐다. 기도정근에 들어갔는데 묘한 형상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내가 손오공이 되어 구름을 타고 다니고 있었다. 땅을 내려다보니 기나긴 띠가 보였다. 더 아래로 내려가 보니 수많은 망자가 죽은 순서대로 줄을 지어 오다가 각기 죄업에 따라 다섯줄로 나뉘어 서는 모습이었다. 그 줄에는 어린이가 늙은이 앞에 서기도 하고 젊은이가 갓난아이 뒤에 서 있기도 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는 법이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필요 없었다. 이러한 체험 후 모든 번뇌가 삶과 죽음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삶에 더욱 집착하고 욕심내고 번뇌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범부에 불과했다. 매사에 욕심이고 번뇌였다. 그럴수록 사불은 내 번뇌를 없애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나 어머니에게 감로수를 내리신 관세음보살님을 그릴 때면 여느 불보살님보다도 내 마음을 편하게 도닥여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 또한 욕심이었을까. 상대적으로 가정 일에 소홀하다보니 남편과 아이들이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때면 잠시 수행은 뒤로하고 다시 식구들을 챙기려 노력했다. 그러다 볼멘소리들이 잠잠해지면 다시 수행에 진력했다. 그러기를 몇 번. 식구들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02년에 사불반 회원들과 함께 연 전시회를 통해서였다. 아이들과 남편은 전시회장에 걸린 내 그림을 보고서야 비로소 진심으로 후원해주기 시작했다.

가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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