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 『안락국태자경』불교인가, 무속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사재동 등, “정토신앙 담은 불교적 내용” 주장
이수자 등, “‘이공본풀이’ 영향 받은 것” 반박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중생을 교화하던 광유 성인이 하루는 서천국 사라수왕에게 유나(維那)로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이에 사라수왕은 크게 감복해 원앙부인과 함께 임정사로 향한다. 그러던 중 만삭이었던 부인은 불편한 몸 때문에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게 되자, 왕에게 자신을 죽림의 자현장자의 종으로 팔아 그 돈을 성인에게 올려 줄 것을 간청한다. 결국 사라수왕은 부인의 뜻에 따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부인은 왕에게 왕생게를 일러주고 헤어진다. 부인은 얼마 후 아들 안락국을 낳게 되지만 장자는 수청을 강요하면서 부인을 괴롭힌다. 성장한 안락국은 부인을 통해 부친의 소재를 확인하고 임정사에서 사라수왕을 만나 안락국이라는 이름과 왕생게를 통해 부자간임을 확인한다. 안락국은 왕으로부터 백색, 홍색, 청색의 연꽃을 받아 죽림으로 돌아와 장자로부터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소생시킨다.”

조선 세조 5년 간행된 『월인석보』에 수록된 『안락국태자경』(이하 『태자경』)의 기원이 되는 ‘기림사 연기설화’의 줄거리다.

『태자경』은 인도, 중국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한국의 독특한 경전으로 『월인석보』에 수록되기 이전부터 설화류로 존재해 왔으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소설 등과 각종 이본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태자경』은 한국 샤머니즘의 원류라 일컬어지는 『이공본풀이』의 내용과 흡사해, 이 이야기가 무속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불교의 정토신앙을 드러낸 것인지를 두고 불교학계와 국문, 민속학계 사이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돼 왔다.
80년대 중반부터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충남대 사재동 교수는 “『태자경』은 미타삼존의 본생담을 담은 불전으로 한국불교사회에 널리 유통된 이야기”라며 불교 기원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안락국태자경에 대하여」(국어국문학 91권, 1984)에서 “『태자경』은 불자들에게 극락왕생을 지향하는 『정토삼부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게 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설적 허구성을 가미해 설명한 것”이라며 “이는 미타삼존이나 관음을 모신 도량에서 대중들의 신심을 높이고 사세(寺勢)를 넓히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이화여대 강사 이수자 씨는 ‘기림사 연기설화’(발표자는 ‘기림사’의 원래 명칭이 ‘지림사’라고 주장하며 ‘지림사 연기설화’라고 했지만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기림사 연기설화’라고 명명하고 있어 이를 따름.)와 『이공본풀이』를 비교 분석한 뒤 “『태자경』은 현재 제주도의 무속제의에서 불려지고 있는 『이공본풀이』의 영향을 받은 이공본풀이계 서사 문학”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지림사 연기설화의 설화적 성격과 의의」(한국서사문학의 연구, 1995)에서 “이공본풀이와 기림사 연기설화는 서사적 줄거리가 같고, 등장인물명과 공간명이 유사해 상호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불교수용이전부터 민간에서 무가로 전승되던 『이공본풀이』가 불교계 서사물에 영향을 끼쳐 『태자경』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즉 『이공본풀이』는 불교수용이전부터 우리나라 무속제의인 열두거리 큰굿의 창조됐을 때 생긴 것으로 기림사 창건과 관련해 만들어진 ‘기림사 연기설화’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또 한양대 조흥윤 교수도 “기림사 연기설화는 불교적 색체를 띄고 있는 것을 보여지나 그 구조와 내용은 전형적인 한국 샤머니즘의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특히 꽃에 의해 죽은 이가 살아나는 것은 샤머니즘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동국대 강사 오대혁 씨는 “『태자경』은 안락국 태자 일가족이 겪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아미타 삼존의 탄생내력과 정토세계를 서사화 한 지극히 불교적인 작품”이라며 “이것이 무가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주어 『이공본풀이』가 구전서사문학의 한 형태로 정착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태자경』이 무속의 영향을 받았는지, 불교에서 기원하는지는 학자마다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태자경』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한국서사문학의 원류가 무속인지, 아니면 불교인지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서둘러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집중돼야 한다는데 학자들은 공감하고 있다.

권오영 기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