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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삼국유사』는 언제 처음 간행됐나

기자명 법보신문
천혜봉 등 “유사 첫 간행은 조선시대”주장
김상현 등, “일연-무극 의해 간행” 반박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달리 야사(野史)를 기초로 기술돼 당시 역사는 물론 사회 문화와 사상 등을 꿰뚫을 수 있는 방대한 자료가 수록돼 있어 그 가치가 높은 역사서로 알려져 왔다.

그 동안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1289)이 저술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는 왕력(王曆)과 본문 5권으로 구성돼 있는 『삼국유사』의 제5권 첫머리에 ‘국존 조계종가지산하 인각사주지 원경충조대선사 일연찬(國尊 曹溪宗迦智山下 麟角寺住持 圓徑照大禪師 一然撰)’이라며 저술자의 이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제작된 초간본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연의 행장을 담은 보각국사 비문에 일연의 다른 저술은 기록돼 있지만 『삼국유사』를 저술했다는 기록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혼자 쓴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초간본도 고려시대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등 학자마다 이견이 분분했다.

일제시대 최남선은 “일연이 찬술한 『삼국유사』는 일국존숙(一國尊宿)이 만년에 이룩한 역작(力作)이므로 그 산문에서 각별히 판각을 계획, 추진하였을 것이며 또한 그 역작이 저술된 전후는 고려의 판각이 성행했던 시기”라며 “『삼국유사』는 일연에 의해 고려시대 처음 간행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견해는 권상로, 황패강 등이 이어받았고 이후 김상현 교수도 「삼국유사의 간행과 유통」(1982, 동양사)에서 “『삼국유사』의 초판간행은 일연이 인각사에서 입적(충렬왕 15년, 1289)하기 이전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에서 “일연의 제자 무극(無極)이 지은 행장을 기초로 민지(閔漬)가 쓴 보각국사 비문에 『삼국유사』 저술 내용이 누락된 것은 당시 『삼국유사』가 제작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는 『삼국유사』에 대한 민지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택일 박사는 「삼국유사의 문헌변화 양상과 변인」(1983, 『삼국유사연구』)에서 “보각국사 비문에서 일연의 저술목록 중 『삼국유사』가 누락된 것은 그 비를 세운 충렬왕 21년(1295) 당시 고본(稿本)이 간행되지 않아 세상에 유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삼국유사』는 일연의 기초 초고에 충렬왕 21년(1295)부터 충숙왕 9년(1322) 사이 제자 무극이 보충해 기록한 뒤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삼국유사』의 중요성으로 볼 때 만약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했다면 후대 그의 제자들이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이후 1986년 김상현 교수는 「삼국유사의 서지학적 고찰」를 통해 “『삼국유사』의 초간의 시기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한발 물러선 뒤 “일연이 만년에 『삼국유사』를 탈고해 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으로 본다면 제자 무극이 초간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초간시기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경주대 이근직 교수는 『삼국유사』왕력의 편찬시기」(1996)에서 “강원도 철원에 대한 표기가 ‘鐵圓’에서 ‘鐵原’으로 바뀐 것은 일연이 사망하고 난 이후인 1308년임에도 『삼국유사』에서는 철원을 ‘鐵圓’혹은 ‘鐵原’으로 혼용하고 있다”며 일연 편찬설을 부정했다. 또 고려대 하정룡 박사는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이체자와 편목, 조목에 대한 서지학적 분석을 통해 “『삼국유사』는 미완성 작으로 고려시대 간행된 바 없고 일연 혼자 쓴 것이 아니며 가장 빠른 판본은 1394년 본”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지학자 천혜봉 박사도 하 박사의 주장과 골자가 거의 같은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지학자와 불교사학자 간의 주장과 반박이 계속돼 왔지만 『삼국유사』의 저자와 초간 시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설령 일연이 완성하지는 못했더라도 그에 의해 『삼국유사』의 기초 골격이 완성됐다면 그의 저술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위해서라도 이에 대한 깊이 있고 다양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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