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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감포 대왕암은 산골처인가 수중릉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황수영 등 “대왕암은 인공 수중릉” 주장
유홍준 등 “지나친 추정… 산골처” 반박


경북 경주군 양북면 붕길리 앞 바다에 떠 있는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인가, 아니면 문무왕의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가?

1967년 신라오악탐사단에 의해 그 실체가 발견된 후 사적 158호로 지정된 대왕암은 그 동안 학계에서 문무왕의 유골을 수중에 봉안한 수중릉인지, 단지 유골 가루를 뿌린 산골처인지를 두고 이견이 분분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30대 왕인 문무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에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 같은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죽은 뒤 화장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장지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1967년 황수영, 문명대 박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라오악조사단이 신라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왕암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수중릉”이라는 발표를 하면서 대왕암이 문무대왕의 수중릉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조사단은 “대왕암 가운데 십자형으로 물길이 나 있고 물길에 인공의 흔적이 뚜렷하며 십자의 중앙부분 물밑에 거북이 등 모양의 길이 3.7m, 폭 2.6m, 두께 1.45m의 개석이 놓여 있어 이 개석 밑에 납골 장치가 돼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황수영 박사는 “옛 기록에 장골처로 나오는 것은 단지 뼛가루를 뿌린 것이 아니라 능을 만들어 묻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대왕암은 문무대왕의 수중릉”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조사단의 건의에 따라 대왕암은 ‘문무대왕릉’이라는 사적지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런 조사단의 발표에 대해 당시 부산대 김정학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조사단이 대왕암을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보는 것은 추정에 불과하다”며 “개석을 들어내 뼛가루를 담은 석함의 존재를 확인하기 전에는 수중릉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론을 펼쳤다.

여기에 1994년 당시 영남대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일부 학자들이 최고 권력자의 정치수요에 편승해 학문적 양심을 저버린 채 확인되지도 않은 추측을 마치 새로 발견한 사실인 양 과대 포장한 사기극”이라며 신라오악조사단의 ‘문무대왕 해중릉’이라는 주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책에서 “거북이 등과 같은 바위 밑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 돌을 들어내 납골을 모신 장치가 있는가를 조사하는 성실한 발굴도 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다”며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대왕암은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한 뒤 납골을 뿌린 산골처”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조사발표는 학문적 업적에 대한 의욕이 학문적 겸손보다도 지나쳤기 때문”이라며 “특히 국사교과서에서 고려 무신정권, 이성계 미화 등 군사영웅사관을 조장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의 역사관에 편승하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같은 해 동국대 박물관 이기선 학예연구관은 유홍준 교수의 주장을 일축하며 “대왕암은 문무왕의 수중릉”이라고 주장하며 논쟁을 이어갔다.

이기선 씨는 94년 미술잡지「가나아트」에 기고한 글에서 “실측조사 결과 대왕암 물길의 동쪽 입구가 서쪽보다 30cm정도 낮아 바닷물이 동에서 들어와 서로 나가게 돼 있으며, 개석 주변도 평편하게 다듬어져 있어 개석이 우연히 굴러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음이 확인되는 등 인공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67년 조사 당시 발견되지 않은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물길의 흔적이 최근의 조사에서는 발견된 점을 토대로 “대왕암은 수중릉”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아직까지 대왕암 안내 표지판에 세계 유일의 수중릉이라는 해설과 함께 “학자 중에는 산골처라는 주장이 있다”는 단서가 적혀져 있을 만큼 대왕암에 대한 진실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대왕암이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이라는 견해가 다소 많은 것은 사실이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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