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스님들은 최고의 탐험가

기자명 법보신문
윤 명 철
동국대 겸임교수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탐험가는 석가모니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인터뷰할 때 한 말이다.

사람들은 탐험가하면 늘 콜롬부스나 아문젠이나 피어리 같은 서양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탐험이란 범선이나 뗏목을 타고 미지의 바다를 항해한다든가, 깊고 깊은 동굴을 찾아 들어간다든가, 혹은 아마존의 정글이나 북극 남극 등 낯설고 신비로운 자연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일을 뜻한다. 물론 남들이 생각하는 통념을 깨뜨리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때로는 생명을 파기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고귀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고, 자신과 인류를 위해서 바람직한 행위는 진리를 구하고, 그것을 펼치는 작업이다. 즉 인간탐험이다.

우리역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또 한 부류의 탐험가들이 있다. 망망대해(茫茫大海)와 막막대사(漠漠大砂)를 건너다닌 승려들이다.

현유라는 고구려 승려는 5~6세기경에 이미 바닷길을 건너 인도로 들어갔다. 혜자와 담징 같은 승려들은 망망대해의 동해를 천문항법으로 건너면서 일본열도에 법의 씨앗을 뿌렸다. 당나라의 승려인 의정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현재 스마트라섬의 어느 지역에서 고구려 승려 2명이 병으로 생을 달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도까지 항해하다가 도중에 실패한 것이다.

백제의 승려들은 왕성하게 대한해협을 항해하여 일본열도를 오고갔다. 일본에서 최초로 세워진 아스까사의 주지는 고구려의 혜자와 함께 백제의 혜총이 맡았다. 신라에서도 승려들이 동해남부의 항구를 출항하여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에 도착하였다. 쿄토의 광륭사에 모셔진 목조미륵반가사유상도 신라의 어떤 스님이 목숨을 건 항해를 완수해낸 결과물이다. 원광, 명랑, 자장 등은 물론이고, 원효와 헤어진 의상도 황해중부를 횡단항해한 것이다. 삼국이 통일된 후에 신라승려들은 주로 황해를 건너 당으로 갔다. 이들은 당 시대의 대표적인 탐험가들이다. 그 중에 혜초는 최고의 탁월한 탐험승이었다.

젊은 혜초는 723년 무렵 광동성의 어느 항구를 출항하여 마카오를 들렸다. 항해에 적합한 북풍계열의 바람을 기다리다가 동남아로 항해하여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에 들렸다. 지금도 해적들이 들끓는 말래카 해협을 통과하여 인도양의 벵골만을 횡단하여 동천축국에 도착하였다. 이 항해는 천문항법이 필수적인 대양항해인데다가 서북쪽으로 북상하는 고난도의 항해이었다.

이렇게 해서 해양탐험을 일단 끝낸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인도 북부 전역을 순례하고 북상하여 현재의 카슈미르와 아프카니스탄 일대를 거쳐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귀국하면서 육로를 택해 파미르를 거쳐 동서문화의 교차점인 카쉬카르를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을 걸어 만 4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혜초는 역사상 처음으로 바다의 실크로드와 사막의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동과 서를 법의 길로 한 번에 이은 승려이면서 해양탐험과 사막탐험을 동시에 성공시킨 위대한 탐험가가 되었다. 그 후에도 통일신라와 고려의 숱한 승려들이 바다를 항해하면서 법을 구하고 전파하였다.

아직은 생사에 착하여 불안과 공포의 미망을 떨구지 못한 채 돛단배에 올라타는 승려들의 발길은 천근만근 무거웠을 것이다.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에서 산과 들과 초목이 없이 오로지 물만으로 이루어진 무한공간의 힘과 의미를 느꼈을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고, 거대한 산맥처럼 달려드는 파도에 얹힌 쪽 배 위에서 백척간두의 절대 극한상황을 체험하고, 생사기로의 찰라에서 사와 멸의 차이도 실존적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한 길고 힘든 항해를 한 승려들은 성패와 관련없이 탐험가가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법의 바다를 항해하여 부처가 된 석가모니처럼 위대한 인간 탐험가가 될 수 있도록 정진한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신문명의 바다에서 인류를 태운 가득 배는 난파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제 구법뿐 아니라 전법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탐험승들의 시대가 도래한 게 아닌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