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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마음에 비추일 때

기자명 법보신문
오 진 모
대한부동산학회 회장

춘하추동 계절의 순환과 반복이 인생무상이라는 허무함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삶의 변화와 더불어 그 느낌이 새삼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계절은 사람에 따라서도 제각기 다른 색깔과 맛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교에서는 춘하추동의 산색을 세월속에 변하는 우리네 머리색에 비유하기도 한다. 봄의 빛깔은 어린아이 머리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청년의 머리처럼 숱과 색깔이 짙으며, 가을의 붉은 빛은 장년의 정열에 비유될만하며, 겨울은 하얗게 세어버린 백발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은 잎(번뇌)이 떨어지고 열매(보리)를 거두는 때로 생각해 보자면, 허망한 인생의 낙조를 떠올리기보다 본질적 회귀의 가르침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가을은 바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단풍을 만드는 주체가 바로 바람이라며, 이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스쳐 나무들은 자신의 잎과 열매를 떨어뜨릴 준비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간혹 가을을 잊은 잎과 열매가 있어 재생의 순리를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인간사에서도 분수를 모르고 시간의 순리를 거스르다 허망한 결말에 이르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불교의 인연법은 스스로 나고 접는 이치와 때를 알고 행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를 거스릴 때 우리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즉 이러한 자연의 인연법은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치라 할 수 있다.

수덕사 만공 스님은 만공법훈에서 바람과 깨달음을 보아 이렇게 노래하였다.
일체가 바람으로 쫓아가고, 일체가 바람으로 좇아 멸하는 것이니,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요달하면, 생도 없고 멸도 없으리라.
이렇게 답을 불러 답을 얻을 때가 법안으로 성품을 보는 때이니라.

이미 가을은 선선한 가을바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였다. 우리는 가을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가을바람을 직시해야한다. 바람을 직시함은 곧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출발점인 것이다. 바람과 마음의 세계를 거닐어 보자. 중국의 17대 조사 승가난제 존자가 하루는 절 마당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바람을 타고 풍경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어느 승려가 그 소리에 귀 기우리는 것을 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승가난제: 이 소리는 바람 때문에 나는 소리이냐, 아니면 풍경 때문에 나는 소리냐?
가야사다: 바람 때문도 풍경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제 마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승가난제: 그렇다면 울리는 네 마음은 무엇이냐?
가야사다: 모두가 고요함입니다.

마음의 세계는 고요, 밝음, 맑음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란함, 어두움, 더러움과 비교되는 분별의 마음이 아니니, 도리어 소란함 속의 고요, 어둠속의 밝음, 더러움 속의 맑음이기에 말만으로 밝힐 수 없는 것이며, 체험의 증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몇해전 전남 월출산을 야간산행을 하였다. 11월 초의 새벽 반달은 하늘에 걸려 있고 별들이 촘촘했다. 랜턴 없이 산행하기 좋았다. 가파른 산등선을 오르다가 숨이 턱에 받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잎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확연히 드러나는 밝고 맑은 달과 앙상한 자작나무 가지가 어우러진 모습이 그야말로 체로금풍이었다.

이제 가을이 완연하다. 선시(청매집에서)한편으로 끝을 맺으며, 우리 불자 모두 가을의 맛에 심취해 봅시다.

나고 죽음은 실상 아니니
실상이란 생사속에 있네
봄은 가지 않고 가을 또한 오지 않았는데
아아, 푸른잎은 벌써 붉게 물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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