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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대선객의 청아한 사자후[br]『학명집』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6.01.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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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스님 편역 / 성보문화재연구원

“학명 스님 법문-편지-가사 집대성한 첫 자료집
“조선 선지 드날린 근대 선사의 삶 이제야 재조명”


‘…선사께서는 늘 “승속과 남녀를 막론하고 유의유식(遊衣遊食)만 즐거움으로 알고 털끝만한 이타심이나 공익성이 없으니 이것은 지식이 낙오된 우리의 악습이다. 불교도로 말하면 나산성(懶散性)이 더욱 심하여 오늘 납자가 되면 내일부터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한객(閑客)이 되려하니, 이것은 오늘날 승니 전반의 병통이다. 나는 선원에서부터 이러한 폐풍(弊風)을 고치기 위하여 나부터 몸소 실행하여 선농을 겸수(兼修)하리라.”하고는, 손수 호미를 들고 도량을 내왕하며 버려진 농토를 새로 치고 산 입구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양답(良畓) 육, 칠십 두락을 얻음으로써 그로 인하여 40여 석의 세미(歲米)를 보게 되었다.…’ - 전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연관 스님의 ‘학명열종(鶴鳴啓宗) 대종사 행장’ 중에서.

학명(白鶴鳴, 1867~1929) 스님은 조선 후기 선문의 중흥주로 추앙받는 백파 긍선 선사의 7대 법손이다. 20세에 출가하여 30여 년간 명산대찰과 선지식을 찾아 수학하고 뼈를 깎는 참선 수행을 거듭한 학명 스님은 1913년 ‘백양산가’라는 깨달음의 노래를 통해 깊은 수행의 경지를 내보였다. 이후 스님은 흩어져가는 조선 불교의 수행 정신과 청정가풍을 바로 세우고 개혁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 등을 돌아다니며 제도를 살피는 동시에 조선 불교 선지를 드높였다. 〈본지 797호 ‘옛 스님들의 편지’ 참조〉

1915년 귀국해 월명암 선원의 조실 방장으로 추대된 스님은 선원을 개설하고 10년을 기한으로 선문 밖 땅을 밟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하며 수행에 전념했다. 이후 스님은 내장사 벽련암 중수 불사를 지휘하며 내장선원 청규를 제정, 선농일치(禪農一致)를 기반으로 하는 불교 개혁의 기치를 세웠다.
그러나 학명 스님에게는 이렇다 할 제자가 없었다. 석정 스님은 “중국 당나라 때 영가진각(永嘉眞覺) 선사가 의발(衣鉢)을 전하지 못하고 독왕독래(獨往獨來)하셨듯이, 학명선사 또한 법등(法燈)을 이은 눈 푸른 제자가 별로 없는 것이 매우 아쉽다”며 근대 선문의 고승에 대한 후대의 기록이 미흡함을 아쉬워했다.
성보문화재연구원(원장 범하 스님)에서 펴낸 『학명집』은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도록 스님의 법문과 글을 집대성한 첫 자료집이며 학명 스님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노장 스님들의 증언을 꼼꼼히 모아 엮은 소중한 기록이다.

『학명집』 발간을 발의한 불모 석정 스님은 전 내소사 서래선림 조실 혜안 스님과 혜곡 스님을 통해서 전해들은 학명 스님에 대한 말씀을 떠올리며 “학명선사께서는 백용성 스님과 함께 수행인은 가급적 시주의 도움을 덜 받고 스스로 농사를 지어서 식생활을 해결해야 한다는 선농일치를 주장하시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1972년 1월 서래선림에서 용맹정진에 관해 법문하신 혜안 스님은 법문에서 1917년 백양사 선원에서 7일간 용맹정진 할 당시 조실이었던 학명스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당시 학명 스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찔하다”고 대선객이었던 학명 스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전했다.

『학명집』에는 연관 스님이 정리한 학명 스님 행장 외에도 스님의 법문과 선문답 기록, 스님이 직접 지은 가사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빠짐없이 수록돼 있다. 전 조계종 종정 동산 스님과 『조선불교통사』의 저자 이능화 거사의 추모 글에서는 스님에 대한 후대의 애틋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부천대학교 김광식 교수와 동국대학교 김종진 강사가 집필한 학명 스님의 선농불교와 불교가사에 대한 연구에서도 선승이자 개혁가였던 스님의 진면목이 엿보인다.

학명 스님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학명집』 발간을 진행한 범하 스님은 “학명 스님은 조선 말기를 지나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당대 선지식으로 활동했음에도 선사의 문집이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연관 스님이 자료를 모으고 어려운 문장을 직접 번역하는 동시에 선사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었던 곳이나 사람들을 일일이 찾고 만나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데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문의 02)701-6830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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