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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권력 지키려 도깨비장난 마라

기자명 법보신문
박 승 원
전 불교포럼 대표

한비자에 ‘귀매최이(鬼魅最易)’의 비유가 등장한다. 즉 귀신과 도깨비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리기가 쉽다는 의미이다. 개나 고양이의 그림은 실체적 기준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귀신과 도깨비는 아무도 본 바가 없으니 어떤 형상으로 그려낸들 개의할 바가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반기업정서’란 용어가 등장했다. IMF 이후 생경한 말이다 했더니, 이제는 완전한 경제용어가 되어 버렸다. 정치인이 부패 등에 연루되어 정치생명이 끝날 때쯤이면 흔히 ‘음모론’을 들먹이듯이, 이는 재계가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꺼내든 말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통계수치를 내밀며 부에 대한 편견과 질시 등 국민의 후진적 경제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매도하면서 어려서부터 올바른 자본주의 원리를 습득시키는 시장경제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액출자제한이나 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도 스스로 지어 만든 업보이자 원죄임에도 불구하고 이 조차도 반기업정서의 산물로 몰아붙이고 있다. 여기에 일부 언론까지 합세하여 ‘반기업정서로 투자의욕이 떨어진다’,‘기업 때리기 멈춰야 경제가 산다’며 생뚱맞게 기업사랑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할 말 없으면 죽이라는 식으로 생떼를 쓰는 듯 한 느낌이다. 다시 말해서 해괴한 도깨비 형상을 그려놓고 무섭다며 호들갑을 떨어대니 일부 국민들도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꼴이다.

정경유착과 분식회계 그리고 금융권을 뒤죽박죽 만든 폰지식 게임(Ponzi scheme) 등으로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국민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던 IMF 위기를 맞아 고개 숙이며 사죄를 하던 재계에 X파일사건에 이어 각종 게이트와 비자금 사건 등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게다가 해당기업의 총수는 슬그머니 외국으로 나갔다가 잠잠해진 후 돌아오면 공권력도 못 본 척하는 해괴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각종 부패와 연루된 정치인과 관료들이 ‘반정치정서’,‘반관료정서’를 탓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교육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얼마나 가증스럽겠는가. 일부 부도덕한 기업인에 대한 비난이 왜 반기업정서란 말인가. 이 땅의 누구든 외국에 나가 우리 기업의 로고나 제품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한 기업에 대한 이유 없는 비난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한 기업주에 대한 비난을 위해 불매운동을 벌이는 경우가 거의 없음이 이를 증명한다.

기업은 소유주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서 존재가치를 가지며(기업실체의 공준), 미래에도 무한히 존재하는 영속적 존재(계속기업의 공준)이다. 즉 현대의 기업은 기업인과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번 출항했다가 무사히 귀항하면 해체되는 중세기 베니스의 모험기업과도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은 기업인에 대한 비난은 곧 기업에 대한 위협이고, 이로 인해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식의 협박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재계에 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현재 필요한 것은 그토록 지고지순한 도덕적 담론이 아니라, 예외 없는 법의 적용일 뿐이다. 노암 촘스키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결과 돈과 힘의 편중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사람의 가치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며 힘의 논리가 게임의 원칙을 지배하면서 ‘심판을 매수하는 능력도 힘’인 세상이 되었다며 개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계는 여기서 자유로운가. 불교계 역시 부자 사찰과 가난한 불자, 힘 있는 스님과 그렇지 못한 스님 등으로 나뉘며 돈과 권력이 종단을 좌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사회는 물론 불교계에서도 소수의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깨비 귀신들이 허공을 맴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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