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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無私)와 지공(至公)의 마음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 정치사회지도자들의 좌표로 충분
만파식적 고사처럼 힘 모으는 게 관건

원효대사는 ‘별기’의 서문에서 대승의 사상이 무사(無私)와 지공(至公)의 두 마음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무사와 지공의 저 두 마음이 지금의 한국 정치사회지도자들에게 더 없이 요긴한 사고방식이라 여긴다.

속으로 아상과 아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으로 국민과 민주주의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유치한 짓들을 서슴치 않는 그런 정치지도자들을 나는 지겹게 보아 왔다.

정치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사업인데, 겉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끄럽게 떠드나 우리의 생활에 실속있는 이익을 별로 주지 않는다. 우선 그들의 말이 성실하지 않다. 언필칭 ‘국민이 원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정당화하나, 기실 그것은 자기의 사사로운 견해를 공공의 것인 양 포장하기에 다름 아니다.

나는 신라가 한반도 동쪽 변방의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지도층의 무사지공의 태도가 몸에 베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무대왕이 감포 앞 바다에 자신의 무덤을 해중릉으로 남겨 왜구의 침략을 죽어서도 물리치는 동해의 수호신이 되겠다고 유언하고, 다음의 신문왕이 감은사를 세워서 용이 된 부왕이 법당에 와서 쉬도록 물길을 만들었다.

나라의 모든 재앙을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상징설화를 문무대왕이 바다에 띄운 것도 다 지도층의 무사지공의 사고방식이 나라를 안녕하게 하는 요체임을 알려주기 위함이겠다.

만파식적의 고사는 두 손뼉이 서로 만나야 합장의 소리가 나지, 한 손으로 아무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가 화평하기 위하여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대대적 세력끼리 합창의 소리를 내도록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상징이다. 현실 세상은 늘 대립이 있기 마련이고 그 대립을 통하여 나라의 정치가 형성되는 것인데, 대립된 견해들이 서로 화평하기 위하여 대립된 마음이 무사지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굴암과 대왕바위(해중릉)를 잇는 일직선이 동짓날 아침의 일출과 만난다는 것도 역시 예사롭게 흘러 보낼 일이 아니다. 이것은 종교의 성스러운 차원과 세속적 정치의 애국심이 무사지공의 정신에서 통합되기를 기원한 정신문화를 반영한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동짓날은 옛 풍습에서 새해 원단(元旦)의 의미를 지니므로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정신이 곧 신라전성기의 이념이었다고 읽어도 무방하리라. 실제로 신라 전성기에 대부분의 지도층들이 원효가 말한 대승의 정신인 무사지공을 생활화했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나는 지금 이 나라 지도층들이 속물적 출세주의자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다는 믿음이 안 간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강대국의 세력이 일으키는 격랑의 파도 속에서 한국호가 안전항해를 하기 위하여 배가 우선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선장이 잘 지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모두 만파식적의 고사처럼 힘을 모아야 한다. 유치한 코드로 편을 기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지도층이 마음을 비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무사지공하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kihyhy@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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