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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와 농촌 살리기

기자명 법보신문

종삼 스님
구례 화엄사 주지

경전을 조금 읽어본 불자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듯 하다. 부처님이 탁발을 나갔을 때 밭을 가는 농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우리 농부들은 손수 밭 갈고, 씨 뿌리는 노동을 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러지 않느냐”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농부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부린다. 마음이 나의 밭이고, 믿음은 나의 씨앗이며, 지혜는 나의 모습이고,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악업을 없애는 것은 내가 뽑는 잡초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감로의 결실을 수확하는 것이 나의 농사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농사짓기라는 작은 부분만 보면 백장선사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선 수행과 농사일을 병행하는 백장청규로 나타났고, 근대 한국 불교에서는 백용성 스님의 선농일치 정신으로 이어졌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는 농업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당했었고, 사찰이나 스님들의 일상생활 및 수행에서도 농사라는 부분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농업 부분이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줄어들어 식량자급율의 저하, 이농으로 인한 농촌의 공동화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구례군 역시 이러한 전국적인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고, 화엄사에서도 예전처럼 농사를 지어 생활하는 자급자족적인 경제가 아니라 가게에서 물품을 구입해 생활하는 모습으로 변한지 오래라 농사에 대한 관념 자체도 예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농업과 식량의 자급자족은 경제논리 차원에서만 저울질 할 수 없는 민족생존의 주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다.

화엄사는 올해 봄 구례군 농민회의 영농발대식을 계기로 농민회와 자매 결연을 맺고 공동경작지에서 모판내기와 모내기를 함께 진행하였다. 거창한 지역포교의 전략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고 지역민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서로가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상사마을 너른 들판에서 진행된 농사일에서 나이가 조금 든 스님들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논바닥의 느낌에 예전 생각을 떠올렸고, 처음 논에 들어가는 강원 학인 스님들은 첫 농사일에 조금 힘들어했다. 하지만 논두렁에 동네 어른들이 정성으로 마련한 새참은 사중생활에서는 맛보지 못한 흥겨운 어우러짐이었다.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른들도 정말 오랜만에 화엄사 스님들과 함께 일을 해보았다며 좋아했다.
 
화엄사의 경우에는 이러한 모습들이 농업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구축이라는 의미와 함께 구례 지역 농민들의 삶에 밀착해 나가는 눈높이 포교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다. 1년에 스님들이 몇 번 논바닥에 들어간다고 구례지역 농민들의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것은 서로간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출발이자, 정겨운 시간일 뿐이다. 앞으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하고, 화엄사 경내에 우리 농산물 판매소를 설치하는 지역 연대 차원만이 아닌 지리산 지역이 가진 역사성을 감안한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한 통일 경작지를 운용해 볼 계획이다. 내년에는 통일경작지에서 수확된 쌀을 북측에 제공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상호방문을 통한 신뢰회복을 통하여, 이념대치의 최전선이었던 지리산 지역에서 생을 마감한 남북의 유주무주 영혼들의 해원을 위한 대동 마당을 열어보고자 한다.

올해 들어 각 지역에서 대규모로 진행 중인 포교전진대회, 포교가 ‘전략’이 되고 ‘대회’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 포교는 ‘현장 속에서만 살아 숨 쉰다’는 믿음으로 화엄사는 상사마을 논두렁에서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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